▣ 프롤로그 : 검색창 속 숨겨진 진실
2018년부터 2025년까지 8년간의 네이버 검색어 데이터를 분석했다. 우리의 검색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클릭 한 번에 담긴 진짜 관심사와 경제 상황, 미래 트렌드까지. 대한민국 돼지고기 시장의 숨겨진 이야기가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졌다.
1장. 국산 돼지고기 : 삼겹살을 넘어선 진화


(1) 제주흑돼지가 보여준 신호
2018년 국산 돼지고기 검색어 7위는 제주흑돼지, 12위는 흑돼지로 나왔다. 흑돼지 중에서도 제주에서 나고 자란 흑돼지에 대한 소비자 선호가 확인된 셈이다. 고무적인 현상은 2019년 8위로 7위의 제주흑돼지를 이어 순위에 등장한 버크셔K다. 지리산의 버크셔K 흑돼지도 나름 오랜 시간 홍보에 힘써왔고 방송에도 소개되어 이러한 성과를 낸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브랜딩이 되는 초기였기에 버크셔K 앞에 지리산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기억하지는 못한 것 같다. 반면 제주도라는 지역이 주는 청량감, 그리고 오랫동안 흑돼지의 명성을 유지한 ‘제주’흑돼지만이 소비자의 기억에 원산지로 각인되었다(버크셔K도 약진을 거듭하면서 2025년 지리산 흑돼지로 19위에 최초로 랭크되었다. 버크셔라는 품종보다 지리산이라는 우리말 원산지가 더 기억하기 쉬운 영향도 있을 것이다.).
소비자는 단순히 “고기 한 근”이 아니라 “어디서 온 무슨 돼지”를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제주라는 청정 이미지, 흑돼지라는 특별한 품종, “제주 여행에서 먹었던 그 맛”이라는 경험. 이 모든 것이 결합하여 단순한 돼지고기가 아닌 ‘브랜드’가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배만 채우는 게 아니라 스토리와 경험을 먹기 시작했다.
(2) 2021년 돈마호크 열풍
2021년 검색 순위에 낯선 이름이 1위로 등장한다. 이름하여 ‘돈마호크’. 2020년 14위로 차트에 처음 등장한 돈마호크가 단 1년 만에 검색순위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지금은 좀 시들해졌지만 2021년에 이어 2022년에도 돈마호크는 내리 검색어 1위를 지켰다.
코로나19로 집콕이 일상이 되자 사람들은 특별한 외식의 추억을 집에서 재현하고 싶어 했다. 레스토랑급 비주얼, SNS에 올릴 화려함, 캠프장의 특별함, 돈마호크는 이 모든 욕구를 충족시켰다. 뼈가 포함되어 실제 고기양은 적었지만, 그 경험과 비주얼이 주는 만족감은 훨씬 컸다.
“집밥도 이제는 경험이다.” 돈마호크가 남긴 메시지이다. 외식 트렌드가 가정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온라인 정육점과 HMR 시장이 이를 적극 수용했다.
(3) 2025년 목적형 소비
‘한돈선물세트’, ‘캠핑고기’, ‘얼룩도야지’, ‘난축맛돈’. 단순히 부위를 넘어 “누구에게 줄 것인가?”, “어디서 먹을 것인가?”, “어떤 품종인가?”까지 고려하는 스마트한 소비자의 시대가 왔다. 특히 품종 검색이 눈에 띈다. 과거 ‘한돈’이면 충분했지만 이제는 ‘얼룩도야지’, ‘난축맛돈’, ‘우리흑돈’ 같은 특정 품종을 찾는다. 각 품종의 지방 분포, 육질 식감, 풍미 차이를 소비자들이 알기 시작한 것이다. 와인의 포도 품종처럼, 커피의 원두 산지처럼, 돼지고기도 미식 영역으로 진입했다.
2장. 수입 돼지고기 : 저물어가는 이베리코와 가성비의 승리


(1) 수입산 이베리코 명품의 추락
2018년 수입산 검색 순위를 휩쓴 ‘이베리코’. 도토리를 먹인 스페인산 명품 돼지로 알려진 당시 외식업계의 절대 강자 키워드였다. 2018년 이베리코 관련 검색어를 7개(이베리코, 이베리코흑돼지, 이베리코베요타, 이베리코돼지고기, 이베리코목살, 이베리코돼지, 이베리코삼겹살)나 고르게 순위권에 올렸던 전성기를 지나 2025년 현재 3개 정도의 검색어(이베리코, 이베리코돼지고기, 이베리코베요타)가 중하위권을 겨우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서서히 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2018년 2위 → 2022년 7위 → 2025년 8위
코로나19 이후 경제 불확실성과 물가 상승이 소비자의 지갑을 얇게 만들었고, 사람들은 비싼 ‘고급’보다 ‘실속’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1인분에 2만원 하는 이베리코? 이제는 사치야.”
(2) 냉동삼겹살의 역습
이베리코가 빠진 자리를 ‘냉동삼겹살’이 채웠다. 2021년 3위 등장 이후 2025년까지 꾸준히 상위 2, 3위권을 유지한다. 압도적 가격 경쟁력(국산 냉장의 절반), 보관 편의성(냉동실에 몇 달 보관 가능, 할인 시 대량 구매), 그리고 의외로 괜찮은 맛. “맛도 괜찮고 가격도 착한데, 왜 굳이 비싼 걸 사?” 소비자들의 솔직한 마음이 검색창에 드러났다.
(3) 냉장육의 반격
더 놀라운 건 냉장수입육의 약진이다. 순위에 나오지는 않지만 ‘수입산 냉장삼겹살’, ‘북미산 냉장육’, ‘홈플러스 보리먹은 돼지’ 검색이 증가하고, 실제 냉동육 수입은 감소하는 반면 냉장육 수입은 24% 증가했다. 수입업체들의 전략이 바뀌었다. “냉동이니까 싸다”에서 “냉장이니까 신선하다”로 정부의 할당관세 정책(냉장육 중심 확대)도 한몫했다. 이제 수입 돼지고기는 가격뿐 아니라 품질로도 한돈과 정면 승부를 걸고 있다.
3장. 금겹살의 진실과 가격 오해
(1) 외식비는 오르는데 원재료는?
2024년 하반기부터 언론에 자주 등장한 신조어 ‘금겹살’. “외식 삼겹살 1인분 2만원 시대”, “서민 음식이 사치품으로” 같은 보도가 쏟아졌다. 그런데 놀라운 데이터가 있다. 한돈자조금 자료에 따르면 마트·정육점의 한돈 삼겹살 소비자가격은 오히려 전년 대비 5~7% 하락했고, 도매가격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2) 가격 괴리의 비밀
외식 삼겹살 가격 상승의 진짜 원인은 원재료비가 아니라 임대료, 인건비, 물류비 때문이다. 2020년 이후 서울 주요 상권 임대료 20~30% 상승, 최저임금 17% 인상(8,590원→10,030원), 전기·가스비, 부자재 가격 모두 상승했다. 한 고깃집 사장의 말이다. “삼겹살 원가는 전체 비용의 30%도 안 돼요. 월세, 인건비, 공과금 합치면 매출의 60% 이상이 나갑니다”
(3) 오해가 만든 위기
문제는 소비자들이 이런 사정을 모른다는 것이다. 언론 보도로 “삼겹살이 금값”이라는 메시지만 받고, “한돈이 비싸졌구나”라고 오해한다. 실제로는 한돈 가격이 내려갔는데 소비자는 비싸졌다고 느끼는 역설이다. 이것이 한돈산업의 가장 큰 위기이다. 품질은 좋고 가격도 합리적인데 이미지 때문에 외면당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소비자 조사에서 2025년 1~4월 “가격이 비싸서 국내산 구매를 줄였다”는 응답이 전년 대비 15% 증가했고, 이들 상당수가 수입산으로 이동했다.
4장. 2025년 소비자가 원하는 것
(1) 양극화 : 가성비 vs 가치소비
시장이 정반대 방향으로 동시에 움직인다. 한쪽은 “1원이라도 싸게”. 냉동 수입산 대량 구매, 할인 행사 대기, PB상품을 선호한다. 경제적 부담이 큰 3040세대, 교육비 지출 많은 가정, 저소득 1인 가구가 이 그룹이다. 다른 한쪽은 “조금 비싸도 좋은걸”. 동물복지 인증 한돈, 친환경 사료 제주흑돼지, 유기농 얼룩도야지 등을 선호한다. MZ세대의 42%가 “가격이 비싸도 동물복지·환경 고려 제품 선택”이라 답했다(4050세대 23%의 두 배). 결과적으로 ‘가성비 시장’(수입산)과 ‘가치소비 시장’(프리미엄 한돈)으로 양분되고 중간 지대는 사라지고 있다.
(2) 온라인의 승리
“이제 돼지고기는 온라인에서도 산다.” 2025년의 가장 명확한 트렌드이다. 쿠팡, 마켓컬리, 오아시스마켓에서 클릭 몇 번으로 주문하고 다음 날 새벽 배송된다. 특히 라이브커머스가 급성장한다. 네이버·카카오 쇼핑라이브에서 정육 전문가가 직접 손질하며 설명하고, 시청자들은 실시간 질문하며 구매한다. 검색어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돈 온라인 구매’, ‘한돈 배송’, ‘한돈 새벽배송’ 검색이 2023년 이후 급증했고, 검색 경로 자체가 포털에서 네이버쇼핑·쿠팡으로 이동 중이다.
(3) 새로운 품목의 탄생
돈마호크의 성공이 남긴 교훈 : “새로운 부위나 조리법으로 시장을 만들 수 있다.” 2025년 검색어에 다양한 신규 부위가 등장한다. ‘돼지 항정살’, ‘갈매기살’, ‘토시살’. 과거 업소용으로만 유통되던 부위가 가정용으로 진출 중이다. 가공품도 다변화된다. ‘한돈 육포’, ‘한돈 저키’, ‘한돈 소시지’, ‘한돈 함박스테이크’. 생고기를 넘어 간편 가공품, 아이 간식, 캠핑용 휴대 식품까지 확장된다. 지역 브랜딩도 치열하다. ‘제주흑돼지’ 성공 후 ‘지리산흑돼지’, ‘강원산돈’ 등 각 지역 특색과 스토리로 차별화를 시도한다.
5장. 한돈의 미래 전략
한돈이 직면한 위기의 본질은 품질도 가격도 아닌, 인식과 소통이다. ‘금겹살’ 부정적 이미지, 온라인 채널 전환 지연, MZ세대와의 소통 부족 등 이것이 진짜 문제이다.




▣ 에필로그 : 검색창이 보여준 미래
8년간의 검색어 데이터가 말해준다. 소비자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을. 2018년 ‘제주흑돼지’로 스토리를 원한다고 했고, 2021년, 2022년 ‘돈마호크’로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고 했다. 2025년 ‘냉동삼겹살’과 ‘동물복지 한돈’을 동시에 검색하며 가성비와 가치소비를 동시에 원한다고 말한다. 한돈의 미래는 이 메시지를 얼마나 잘 읽고 빠르게 대응하느냐에 달렸다. 품질만으로는 부족하다. 적정 가격, 편리한 구매, 공감 스토리, 새로운 경험. 이 모든 것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 ‘금겹살’ 오해를 바로잡고 온라인으로 진출하며, MZ세대 언어로 소통하고 새 제품으로 시장을 개척하며, 생산 효율화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제주흑돼지는 ‘스토리’로 돈마호크는 ‘경험’으로 시장을 만들었다. 한돈도 할 수 있다. 검색창은 이미 답을 주었다. “신선함과 맛을 지키되 합리적 가격과 새 경험을 함께 제공하라.” “투명하게 소통하고 온라인으로 만나며, 가치를 이야기하라.”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이다. 2026년 검색창에는 어떤 단어가 올라올까요? ‘한돈 HMR’, ‘동물복지 한돈’, ‘지속 가능한 한돈’, ‘한돈 정기배송’ 이런 긍정적 검색어가 상위권을 차지하기를 기대한다. “좋은 돼지고기란 무엇인가?” 그 답은 검색창 속에, 그리고 우리의 선택 속에 있다.

월간 한돈미디어 2025년 11월호 52~59p 【원고는 ☞ jynam@naver.com으로 문의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