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2026년 대한민국 삼겹살 시장의 골든타임이 지나고 있다.
대한민국 외식 시장에서 ‘삼겹살’은 단순한 돼지고기 부위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다. 1970년대 말 로스구이의 유행과 함께 시작된 삼겹살 열풍은 IMF 외환위기를 거쳐 서민의 가장 친숙한 단백질 공급원이자 소주 한 잔을 곁들이는 ‘회식의 대명사’로 군림해 왔다. 그러나 2026년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풍경은 사뭇 다르다. 반세기 넘게 이어온 ‘불판 위에서 직접 고기를 굽는’ 로스구이 문화가 한계에 다다랐다. 통계에 따르면 2025년 하반기부터 삼겹살 구이 전문점의 폐업률은 전년 대비 급증하고 있다. 주요 상권의 매출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고물가로 인한 원가 부담과 인건비 상승은 차치하더라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있다.
2026년의 소비자는 이제는 옷에 밴 고기 냄새를 낭만으로 여기지 않는다. 1인 가구의 비중이 40%에 육박하고, ‘혼술’과 ‘혼밥’이 보편화된 시대에 2인분 이상 주문이 필수인 구이 문화는 거대한 장벽이 되었다. 또한 직접 고기를 뒤집고 구워야 하는 ‘노동 집약적 식사’보다, 셰프에 의해 완성된 ‘미식적 가치’를 온전히 즐기려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 이제 삼겹살은 ‘안주의 굴레’를 벗어나 ‘식사의 정점’으로 진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운명에 처했다.
2. 말레이시아 Pudu에서 만난 ‘삼겹살의 미래’ : 왕메이키(王美記)의 전율

필자는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 올해 초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노포 거리인 푸두(Pudu) 지역을 찾았다. 그곳에는 전 세계 육류 전문가들이 ‘성지’로 꼽는 왕메이키(Wong Mei Kee, 王美記) 식당이 있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섭씨 30℃를 웃도는 열기 속에서도 식당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들은 단 하나 ‘다툭 웡(Datuk Wong)’이 구워내는 크리스피 로스트 포크(Siew Yok, 燒肉)를 맛보기 위해 기꺼이 2시간 이상의 대기를 감수하고 있었다. 필자 역시 기대와 설렘 속에서 그 기다림에 동참했다.
마침내 거대한 화덕에서 꺼내진 삼겹살 덩어리를 목격했을 때 필자는 이것이 우리가 알던 ‘돼지고기구이’와는 차원이 다른 영역임을 직감했다. 황금빛으로 화려하게 피어오른 껍질은 마치 미세한 기포가 살아있는 보석 같았으며, 도마 위에서 칼이 지나갈 때마다 들리는 ‘콰작’ 하는 소리는 식욕을 넘어선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입 안에 넣는 순간 첫 번째로 다가온 것은 극상의 바삭함이었다. 마치 잘 구워진 페이스트리처럼 껍질이 부서지면, 그 아래 갇혀 있던 풍부한 육즙과 숯불의 훈연 향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방의 질감이다. 느끼함은 증발하고 오직 고소한 풍미만이 젤리처럼 부드럽게 혀를 감쌌다.
더 놀라운 점은 손님들의 소비 방식이었다. 누구도 술을 먼저 찾지 않았다. 닭기름으로 윤기를 낸 오일 라이스 위에 슈욕 한 접시, 그리고 셰프가 직접 만든 특제 칠리소스. 이것은 완벽한 ‘한 그릇의 미식 식사’였다. 왕메이키의 삼겹살은 더는 안주가 아니었다. 셰프의 장인 정신과 미트 사이언스가 결합한 ‘독립적인 요리’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었다. 필자는 그곳에서 한국 삼겹살 시장이 나아가야 할 명확한 해답을 보았다.
3. 동남아시아의 삼겹살 요리화 전략 : 슈욕(Siew Yok)과 무껍(Moo Krob)의 분석
말레이시아의 슈욕(Siew Yok)과 태국의 무껍(Moo Krob)은 뿌리는 같지만, 조리법에서 미세한 변주를 주며 삼겹살을 ‘요리’의 반열에 올렸다.
①슈욕(Siew Yok) : 광둥식 로스팅 기법을 근간으로 한다. 삼겹살 껍질에 수천 개의 구멍을 내고 소금과 향신료로 마리네이드한 뒤 고온의 화덕에서 천천히 구워낸다. 이 과정에서 껍질 속 수분은 빠지고 지방이 끓어오르며 ‘크래클링(Crackling)’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구이’가 아닌 ‘과학적 조리’의 산물이다.
②무껍(Moo Krob) : 삶은 삼겹살을 건조한 뒤 기름에 튀겨내는 태국식 기법이다. 슈욕보다 바삭함이 더 강렬하며 덮밥이나 볶음 요리의 주재료로 쓰인다. 이 두 요리의 공통점은 ‘부가가치의 창출’에 있다. 한국의 삼겹살 구이는 원육의 질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지만, 이들은 조리 기술을 통해 평범한 부위를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다. 또한 조리 시간이 긴 대신 제공 시간은 짧다. 주방에서 미리 완성해두기 때문에 손님은 기다리지 않고 최고 수준의 요리를 즉시 받는다. 이는 2026년 외식업의 핵심인 ‘효율성’과 ‘미식 경험’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4. 왜 대한민국은 ‘요리 시대’로 전환해야 하는가?
필자가 연구해온 미트 마케팅과 팬덤 마케팅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 한국의 삼겹살 로스구이는 브랜드 차별화가 불가능한 ‘레드 오션’이다.
(1) 첫째, 셰프의 부재를 기술로 극복해야 한다.
기존 로스구이는 손님이 굽는 방식(Self-cooking)이거나 직원이 구워주는 방식(Service-cooking)이다. 전자는 맛의 편차가 심하고 후자는 인건비 부담이 막대하다. 반면 슈욕 형태의 ‘요리 삼겹살’은 주방에서 셰프가 완벽하게 컨트롤하여 내놓는(Chef-driven) 방식이다. 이는 ‘전문성’이라는 강력한 브랜딩 수단이 된다.
(2) 둘째, 팬덤 마케팅의 기반은 ‘고유성’에 있다.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로스구이는 팬덤을 형성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집만의 바삭한 껍질 식감”이나 “독보적인 훈연 향”을 가진 요리는 강력한 마니아층을 형성한다. 왕메이키에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이유는 고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오직 그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맛의 텍스처’ 때문이다.
(3) 셋째, 소비 연령층과 성별의 확장이다.
연기와 냄새를 피하는 젊은 여성층과 쾌적한 식사를 원하는 고령층에게, 완성되어 나오는 삼겹살 요리는 매우 매력적인 대안이다. 이는 저녁 술자리 중심에서 ‘점심 미식 시장’으로의 확장을 의미하며, 매장의 가동률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된다.
5. 2026년 대안 : ‘K-삼겹살 요리’를 위한 3대 로드맵
우리는 왕메이키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한국형 삼겹살 요리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1) 1단계 : 원육 브랜딩의 전환(빙선육과 숙성 기술의 결합)
필자가 강조한 교차 숙성육과 같은 고품질 원육을 단순히 굽는 용도가 아닌, 장시간 로스팅에 최적화된 상태로 가공해야 한다. 껍질의 바삭함을 극대화하기 위한 드라이 에이징 기술과 수비드 기법의 결합은 한국형 슈욕의 기초가 될 것이다.
(2) 2단계 : 사이드 메뉴의 메인화(오일 라이스와 파무침의 재해석)
왕메이키의 오일 라이스처럼 삼겹살 요리와 완벽한 페어링을 이루는 ‘식사용 탄수화물’을 개발해야 한다. 한국의 쌀 문화를 활용한 솥밥이나 전통 장류를 베이스로 한 특제 소스는 삼겹살을 ‘안주’에서 ‘식사’로 격상시키는 핵심 요소가 된다.
(3) 3단계 : 공간 마케팅의 변화
기존의 불판이 사라진 테이블은 더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플레이팅이 가능해진다. 이는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한 비주얼 마케팅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하며, ‘삼겹살 요리 전문점’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선점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6. 삼겹살, 다시 주인공으로 서다.
2026년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익숙한 로스구이의 관성에 머무르며 서서히 쇠퇴할 것인가, 아니면 왕메이키의 슈욕이 보여 준 것처럼 ‘요리’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할 것인가. 삼겹살은 대한민국 육류 문화의 자존심이다. 이제 우리는 집게와 가위를 내려놓고, 셰프의 칼끝에서 탄생하는 진정한 삼겹살 요리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구이’가 멈춘 곳에서 ‘요리’는 시작된다. 이것이 바로 2026년 대한민국 삼겹살 시장이 직면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유일하고 강력한 대안이다. 필자가 말레이시아의 그 허름한 노포에서 느꼈던 전율이, 머지않아 대한민국 모든 삼겹살 식당의 테이블 위에서 재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월간 한돈미디어 2026년 2월호 103~108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