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정보뉴스 관리자 기자 |
“역사는 하나의 무기이다.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 필자는 대한민국 돼지 이야기(2021년), 삼겹살의 시작(2019년, 대한민국 돼지산업사(2019년), (가제) 대한민국 돼지 수출의 역사(2022년 출판 예정) 등 우리나라 돼지고기의 역사를 정리한 책들을 썼다.
다큐 ‘삼겹살 랩소디’ 제작에 참여하면서 우리 민족과 돼지와 돼지고기에 관한 인문학 공부를 충실히 했다. 과거를 공부하고 오늘 식육산업 현장에서 식육마케터로 활동하면서 필자가 생각하는 코로나 이후 돼지고기 소비시장 환경변화에 대해서 거시적 관점으로 정리해 보았다.
1. 과거의 돼지고기
전 세계 어느 나라나 돼지고기는 가난한 농민, 노동자의 고기였다. 우리나라 역시 돼지고기는 가난한 농민, 노동자의 고기였다. 돼지고기는 가난한 사람들의 축제식이면서 생존식이였다. 해방 이후 압축성장의 산업화로 급속도로 붕괴한 농촌 공동체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도시에서 지탱해 준 것이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다.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 장시간 삶거나 끓여 먹던 전통적인 습식 고기 요리법은 불판에 바로 구워 먹는 건식 요리 로스구이를 유행시켰다.
건식 요리는 근내 지방이 많은 부위가 맛있다. 그래서 우리가 삼겹살과 투뿔등심을 좋아한다. 공동체 식당, 공간 전개형 상차림이 우리 고기 소비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치킨은 일인 일닭이지만 삼겹살은 삼삼오오 모여서 같이 먹는다. 삼겹살(돼지고기)은 단순한 식재료라는 의미를 넘어 우리의 마지막 공동체를 유지해 온 축제식이고 지친 노동을 위로하는 생존식이였다.
2. 코로나 시대의 돼지고기
코로나 이전 돼지고기 소비 패턴 조사에서 주부들은 가정에서는 한돈이라고 답을 했다. 코로나로 외식이 줄고 가정 소비가 늘어나니 정말 한돈 소비가 늘어서 한돈산업은 코로나 수혜자가 되었다. 코로나 시대에 가정 내 취식이 늘고, 가정간편식(HMR) 제품 소비가 늘어나고, 마켓컬리나 오아시스, 쿠팡 등 인터넷에서 육류 구매가 늘어나고 있다. 가정 내 취식이 늘고 HMR 제품 소비가 늘어나는 건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의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마켓컬리, 쿠팡 등의 인터넷을 활용한 육류 소비가 늘어나고 마켓컬리, 쿠팡 등이 외국 자본을 투자받아서 저렴하게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기현상일 수도 있다. 오아시스처럼 온·오프라인을 잘 결합한 옴니채널 방식의 신유통 구조가 더 경쟁력이 있을 수 있다. 아니 동네 정육점들이 다시 고기 반찬가게로 인기를 얻을 수도 있다. 코로나로 생긴 현상을 분석하는 것은 좋지만 우리의 미래라고 단정하면 안 된다. 2021년 도축두수가 전년 대비 늘어나도 가격이 더 좋았다. 소비가 늘어서이다. 특히 동네 정육점에서 돼지고기 구매를 많이 하니 도매시장 가격이 더 좋다.
3.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돼지고기
앞으로 돼지고기 시장을 전망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저출산에 의한 인구 감소로 돼지고기 전체 소비량이 감소한다.
수명이 늘어나서 통계상 인구는 급격히 감소하지 않지만 연령대별 돼지고기 소비량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2)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지방 많은 고기에 대한 거부감이 커진다.
1980년대 이후 돼지고기 전성시대의 주 소비층인 베이비붐세대가 고령화되면서 젊었을 때 먹던 기름기 많은 고기에 대한 건강상의 이유로 소비를 줄이게 될 수 있다. 1980년 미국 양돈농가들의 슬로건 “pork is other white meat” 돼지고기는 건강에 좋은 백색육이라는 홍보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3) HMR, RMR 육류 제품 개발이 활성화되면 수입 돼지고기, 닭고기 소비가 늘어난다.
전 세계적으로 닭고기 소비가 늘어나는데 우리나라만 유독 닭고기 소비가 저조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정 내 닭고기 요리가 한정되어 있고, 닭고기를 비싼 외식 형태인 치킨으로 소비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치킨은 야식이지 주식이 아니라 소비량이 급격히 늘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HMR 제품 소비가 늘어나면 HMR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사의 입장에서는 값이 싼 닭고기를 활용한 제품들의 생산을 늘려나갈 것이다. 이미 미국 등 서구의 냉동 HMR 제품 시장에서 닭고기를 원료로 한 제품군은 상당한 수준이다. 다양한 맛과 저렴한 닭고기 HMR 제품이 출시된다면 닭고기 소비가 늘어날 수 있다. 거창하게 HMR 제품이라고 하지만 HMR도 그냥 육가공품의 한 종류일 뿐이다. 또한 치킨샌드위치(버거) 시장이 커질 수도 있다. 한돈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체육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데 대체육보다는 닭고기와 경쟁을 먼저 준비해야 한다.
(4) 환경에 관심이 높아진다.
우리나라 양돈산업은 산업화로 소득이 증가하지만 외화가 풍부하지 않았던 시대에 육류 소비량이 급격히 증가하는데, 한우는 생산 사이클이 길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반면 양돈은 1960년대만 해도 잔반 등 국내에서 충분히 사료를 확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장려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 급격한 소득증대로 육류 소비가 급증하면서 양돈사료를 수입해서 돼지를 키우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전략적으로 양돈산업을 육성해 왔다.
아마 1980년대까지만 해도 환경문제는 양돈산업에 큰 부담이 되지 않았지만 2020년대 들어서는 환경문제는 한돈산업에 가장 큰 문제가 된다. 단순히 환경시설에 대한 투자비의 증가 문제가 아니라 한돈산업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가져 올 수도 있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축산업, 특히 소고기 산업이 공격을 받고 있지만 한돈산업이 환경문제에 봉착하면 힘든 일들이 많아질 것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기업이 사료산업에 진출하고 수입 곡물로 사료를 만들어 축산농가에게 공급해서 육류를 생산하는 연관 산업화가 이루어졌다. 2020년대 들어서는 대기업이 중소규모의 육류 수입업체들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대기업들이 직접 육류를 수입해서 공급하는 새로운 산업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이때 그들의 명분은 환경문제가 된다.
한돈산업은 아직까지 한돈의 아이덴티티(정체성)가 확실히 정립되어 있지 않다. 다시 말하면 외국 품종 돼지를 외국에서 수입한 사료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키우는데 왜? 한돈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비판에 대해서 확실한 한돈 아이덴티티를 확립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환경문제가 대두되면 한돈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
(5) ‘Less Better and Local’ 새로운 시대의 육류 소비 패턴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한 이후 최근까지는 배고픔의 시대여서 고기는 없어서 못 먹는 것이고 많이 먹으면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MZ세대라는 새로운 인류에게는 고기는 더는 계급을 상징하는 것도 건강을 위해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단백질은 대체육 등으로 얼마든지 섭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MZ세대는 좋은 고기를 적게 먹어도 맛있게 먹고 싶어 한다. 또한 안전을 넘어 안심할 수 있는 고기에 대한 욕구가 커져서 로컬(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친환경적이고 건강하게 자란 고기에 대한 가치를 더 한다. 돼지 농장들의 지산지소, 6차산업 브랜드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다.
(6) 산업화 시대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면서 ‘우리가 남이가’ 외치던 게마인샤프트 공동체 사회의 제례 같은 회식을 거부하고 가족 가치를 높이는 게젤샤프트 이익 사회적인 소비 행동을 보인다.
코로나 이후 시대가 긴장되는 건 코로나 같은 팬데믹을 경험한 사람들의 과거와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전염성 질병인 코로나는 공동체 식탁, 공간 전개형 식문화를 빠른 속도로 개인 상차림으로 전환할 것이다. 회식이라는 문화가 더 급격히 줄어들 수도 있다. 이는 회식의 대표메뉴인 돼지고기 소비에 큰 충격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회식 때 주로 먹는 삼겹살은 베이컨 스펙이다. 이는 일본에 부분육이 수출되면서 삼겹살도 베이컨 원료용으로 수출되었기 때문에 생겨났다.
(7) 메이저 브랜드 시대가 가고 소규모 농장 브랜드 시대가 온다.
지금까지는 연간 매출 수천억원을 하는 메이저 브랜드들의 전성시대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대일 냉장 수출을 위한 LPC 건설과 마침 국내의 대형 할인 매장들의 활발한 개장으로 메이저 돼지고기 브랜드들이 탄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다. 마켓컬리, 오아시스, 쿠팡 등 인터넷 유통에서는 대량 생산의 메이저 브랜드보다는 개성이 강하고 차별화된 농장 브랜드 돼지고기에 대한 욕구가 커진다.
4. 돼지고기는 더는 값싼 고기가 아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 중 돼지고기 소비량이 닭고기와 소고기 소비량을 합친 것보다 많은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 정도일 것이다. 두 민족간 역사 문화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인지 더 고민해 봐야겠지만 지금까지 돼지고기는 우리에게 늘 사랑받는 고기였다. 그런데도 중국인들은 고기하면 많이 먹는 돼지고기를 말하지만 우리나라는 고기하면 소고기를 이야기한다. 입으로 좋아하는 것과 머리로 좋아하는 고기가 일치하지 않는 모순점을 가지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식민지에서 값싼 농산물을 생산해서 노동자들에게 값싼 식품을 공급했다. 산업화 시대에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켜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양돈산업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공로자였다.
지구 온난화로 전 세계 농산물 가격이 상승하니 물가 안정을 핑계로 농산물 가격이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삼겹살 가격이 또 공격의 대상이 될 것이다. 우리가 샤넬같은 명품 가방이 아무리 비싸도 명품 품질과 브랜드 가치를 이야기하지 가격을 거론하지 않는 것처럼 이제 한돈은 단순화 브랜드화를 넘어서 명품 브랜드화를 추진해야 할 때이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맛있는 고기를 먹고 싶어 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돼지고기는 지금까지의 돼지고기와 다른 돼지고기를 원한다. 아니 한돈의 경쟁 상대는 수입 돼지고기가 아니라 닭고기와 수입 소고기이다. 아직까지 수입 돼지고기는 한돈의 수급을 보조해주는 역할이 컸다. 지금까지는 냉장육은 좋은 고기 냉동육은 나쁜 고기라는 패러다임으로 시장을 방어해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냉동, 해동, 숙성 등 식육과학이 발전해서 냉동육과 냉장육의 차이를 못 느낄 수준까지 되었다.
미국이나 유럽은 돼지고기 소비의 70~80%를 햄·소시지 등 육가공품으로 고기의 맛을 디자인해서 먹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돼지고기 소비의 70~80%를 생고기로 단순 조리해서 먹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이 빨리 커서 생산성만 좋으면 가공을 통해 맛있는 육가공품으로 소비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냥 생고기를 요리해서 먹기 때문에 우리가 더 맛이 좋은 돼지고기가 필요하다.
이제 우리 육류 생활에 맞는 돼지고기 생산에 한돈농가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삼원교잡의 돼지는 버크셔나 두록 등 단일 품종의 돼지보다 고기 맛이 밍밍하고 맛없다. 아마 지금 많이 보급되고 있는 돼지품종도 맛보다는 생산성을 고려하고 있다면 전략적으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 한돈산업이 어떻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산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면 생산비가 비싸도 더 맛있는 우리만의 개성 강한 돼지고기를 생산하는 것이 전략적 사고의 전환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뉴노멀이니, 4차산업이니, 마켓 4.0이니, 대전환 시대니, 별말들을 다 하지만 우리 한돈산업은 아직도 1900년대 초반 미국의 포드가 검정색 T-1 자동차를 값싸게 생산하던 마켓 1.0 시대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배고팠던 베이비붐 시대의 인류가 아니라 풍요속에 자라난 MZ세대가 돼지고기의 주 소비층이 되어가고 있다면 이제 MZ세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물어봐야 하는 시대이다. 무엇보다 비싸게 키워서 더 비싸게 팔면 되는 시대이다.
월간 한돈미디어 2022년 3월호 【원고는 ☞ brandkim@naver.com으로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