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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양돈산업, 해외 진출의 길을 찾아야 할 때이다.① / 김태경 박사

- 일본 사례에서 배우는 글로벌 전략의 교훈
김 태 경 박사 / 식육마케터
건국대학교 미트컬쳐비즈랩

 

1. 위기의 신호, 변화가 필요한 시점

 

한국 양돈산업이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내수시장 중심으로 성장해온 우리 양돈업계가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 포화, 지속적인 사육비용 상승, FTA 체결에 따른 수입육 증가, 강화되는 환경 규제 등 여러 도전 요인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시장 구조의 변화다. 한때 70%를 넘나들던 우리나라 돼지고기 자급률은 현재 73~74%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FTA가 본격화되면서 칠레, 미국, EU 등에서 들어오는 수입육의 가격 경쟁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국내 생산비 상승과 맞물려 우리 양돈업계의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약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양돈산업의 해외 진출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흥미롭게도 일본의 돼지고기 자급률은 약 48% 수준으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다. 소비량의 절반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자급률이 낮은 일본이 해외 진출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앞서 나가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이미 캐나다, 칠레, 호주, 동남아시아 등 전 세계 곳곳에 생산기지를 확보하고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일본은 일찍부터 국내 시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부족한 공급량을 해외에서 확보하되 품질과 브랜드는 일본이 관리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그 결과 세계 최대 돼지고기 수입국 중 하나이면서도, 수입의 상당 부분에 자국 기업의 손길이 닿아 있어 위기 대응력이 높은 구조를 만들어냈다.

 

2. 캐나다 하이라이프, 일본 맞춤형 생산의 성공 모델

 

일본 양돈업계의 해외 진출 중 가장 주목받는 사례는 캐나다 하이라이프(HyLife) 투자다. 캐나다 최대 양돈기업인 하이라이프는 사료 생산부터 종돈 개량, 양돈, 육가공, 물류까지 모든 과정을 자체 관리하는 수직계열화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일본 종합상사 이토추가 주목했다. 2010년 일본시장 공략 프로그램을 시작한 하이라이프는 2012년 이토추와 자본 제휴를 맺었다. 이토추가 49.9% 지분을 투자하면서 본격적인 ‘일본 맞춤형 사육 프로그램’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단순히 투자에 그치지 않고, 일본인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는 돼지고기를 생산하기 위한 전방위적 개선 작업에 나선 것이다.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사료 배합이었다. 기존 옥수수와 대두 중심의 사료에 보리와 밀을 증량해 지방의 질을 개선했다. 전용 삼원교배종(LWD) 육종도 도입했다. 목표는 명확했다. ‘담백하고 부드러우며 지방이 적절히 붙은, 냄새 없는 돼지고기’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기술적 혁신도 이어졌다. 사료에 허브(오레가노, 타임, 시나몬 등)를 첨가해 향미를 높이고 돼지 특유의 냄새를 제거하는 기술을 선구적으로 도입했다. 도축장 설비도 개선해 스트레스 완화 사육을 실천했다. 하이라이프의 그랜트 라자룩 CEO가 “우리가 일관생산을 통해 독자적인 프리미엄 포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자부할 정도로 통합 생산체계가 차별화 경쟁력의 핵심이 되었다.

 

생산뿐만 아니라 마케팅에서도 혁신을 보였다. 2019년 도쿄의 고급 상권인 다이칸야마에 ‘HyLife Pork TABLE’이라는 브랜드 직영 레스토랑 겸 정육 판매장을 열었다. 이곳은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일본 소비자에게 하이라이프 돼지고기의 맛을 직접 경험시키고 피드백을 받는 브랜드 허브 역할을 했다. 다양한 돼지고기 부위를 이용한 요리를 선보이고 요리 워크숍을 개최함으로써 브랜드 인지도와 충성도를 동시에 높여나갔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하이라이프 포크라면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이 일본 시장에 확산하였고, 현재 일본 내 고급마트에서 하나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토추 상사는 “캐나다의 돼지고기 자급률은 250%를 넘지만 일본은 약 50%에 불과하여, HyLife는 일본의 돼지고기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기 파트너”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이라이프 사례의 핵심은 해외의 저렴한 사육환경(풍부한 곡물과 용수, 넓은 토지)을 활용하면서도 일본식 고품질 생산관리와 자본 투입을 결합한 데 있다. 이는 일본 민간기업의 해외 농업투자와 현지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지향 경영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3. 일본햄, 글로벌 공급망의 완성체

 

일본햄 주식회사(현재의 NH Foods)는 또 다른 차원의 해외 진출 모델을 보여준다. 일본 최대 육가공 기업 중 하나인 일본햄은 197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해외 사업을 시작해 현재 전 세계 15개국 64개 거점을 운영하고 있다. 해외 종업원만 5천여명에 달하며, 소·돼지·닭 사육부터 육류 가공·판매, 식품 제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국제적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일본햄의 해외 진출 전략은 크게 세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해외 생산 통합이다. 호주에 대규모 쇠고기 사업을 구축해 사육부터 도축·가공까지 일원화된 수직계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튀르키예에서는 양계 사업을, 동남아 태국에서는 합작을 통해 돼지고기 가공품 제조·판매 법인을 운영한다. 축종별로 세계 최적지에 생산거점을 배치한 것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칠레 사업이다. 일본과 EPA 체결로 돼지고기 관세가 낮아진 것을 활용해 NH Foods Chile를 거점으로 칠레산 돼지고기의 일본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칠레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등이 없는 청정 지역으로 일본 시장에 신선육 수출이 가능한 몇 안 되는 국가다. 일본햄은 이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칠레산 돼지고기를 일본에 공급하면서 품질 관리를 직접 챙기고 있다.

 

둘째는 글로벌 트레이딩 네트워크다.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지에 육류 조달 루트를 확보해 가격 경쟁력 있는 육류를 일본 및 제3국에 공급하고 있다. 이러한 다원화된 조달망을 통해 특정 국가의 수급 불안이나 가격 변동 위험을 줄이고 안정 공급을 실현했다. 예를 들어 미국 자회사 Day-Lee Foods를 통해 미국산 돼지고기 및 가공품을 현지 생산·판매함과 동시에 일본으로도 수출하며, 영국 법인을 통해 유럽산 육류를 조달하는 식으로 전 지구적 공급망을 운영한다.

 

셋째는 현지화와 브랜드 전략이다. 미국에서는 자사의 ‘Crazy Cuizine’ 브랜드로 아시아풍 가정간편식을 판매하고, 태국에서는 일본식 햄·소시지 제조 기술을 접목한 Thai Nippon Foods 제품을 판매하는 등 현지 소비자 기호에 대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동시에 현지 생산 제품의 일부는 일본으로 역수입해 ‘일본 퀄리티’ 제품군으로 공급함으로써 이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일본햄 사례는 대기업 중심의 해외 진출 모델을 보여준다. 막강한 자본력과 사업 포트폴리오를 가진 기업이 글로벌 생산·유통망을 구축하여 수직계열화된 해외 생산기지, 광범위한 무역 네트워크, 현지 브랜드화를 동시에 실현한 것이다. 일본 양돈업계에서 이러한 기업형 양돈업체들이 등장하면서 일본 양돈 생산의 약 절반을 기업 경영농장이 차지하는 구조로 변화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4. 1980년대 대만 양돈 기지화

 

1980년대 일본이 대만에서 실행한 ‘양돈 기지화’ 전략은 오늘날 글로벌 공급망 관리의 선구적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당시 일본은 높은 토지비용과 환경 규제로 인한 국내 생산비 상승, 그리고 낮은 돼지고기 자급률이라는 구조적 딜레마에 직면해 있었다.

 

일본 기업들이 택한 해법은 흥미롭게도 직접 투자나 농장 소유가 아니었다. 대신 이토추, 미쓰비시 같은 대형 상사들을 중심으로 대만의 기존 생산·가공 인프라를 일본 규격에 맞춰 운영하는 장기 조달 계약 모델을 구축했다. 대만 측은 HACCP 위생 기준과 콜드체인 시스템을 도입하고, 일본이 요구하는 정확한 컷팅과 포장 규격을 충족하는 전용 라인을 갖췄다. 이 ‘소유 없는 통제’ 방식은 1990년대 중반까지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대만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대일 돼지고기 공급국이 되었고, 일본은 안정적인 가격과 품질의 육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지리적 근접성 덕분에 신선육의 리드타임도 대폭 단축됐다.

 

그러나 1997년 대만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이 정교한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붕괴했다. 일본행 생육 수출이 즉시 중단된 것이다. 위기는 곧 기회가 되었다. 일본은 이를 계기로 캐나다, 미국, 칠레 등으로 공급망을 과감하게 다변화했고, 일부 경우에는 HyLife 같은 해외 기업에 자본 참여까지 하며 더욱 견고한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대만 양돈 기지화 사례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요한 것은 물리적 소유가 아니라 규격과 품질에 대한 통제력이며, 위기 상황을 대비한 공급원 다변화야말로 진정한 리스크 관리라는 점이다.

 

칠레와는 EPA 체결로 상호 육류교역이 활발해졌다. 칠레는 수출지향형 양돈산업을 갖추고 있어 돼지고기 생산의 절반 이상을 수출하며, 이 중 상당량(약 13~14%)이 일본으로 향한다. 일본은 이러한 남미 공급원을 다변화 전략의 하나로 삼고, 현지 투자보다는 장기공급 계약이나 합작회사 설립 등을 통해 일본시장 맞춤형 생산을 유도한다. 일본 수입업체가 칠레 업체와 계약사육을 맺어 일본 규격의 고기를 생산케 하고, 현지에서 부분육 가공 후 일본으로 수출하는 형태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일본의 해외 진출은 ①직접 투자형(캐나다 HyLife), ②글로벌 기업형(일본햄), ③파트너십형(칠레 등 계약/합작), ④브랜드 경쟁형(대만 등 수출시장 대응)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 모두 ‘해외에서 생산하거나 확보한 돼지고기를 자국 시장에 유리하게 활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5. 일본 성공의 핵심 요소 분석

 

일본 양돈업계의 해외 진출 성공에는 네 가지 핵심 요소가 작용했다. 첫째는 자본 및 지분 구조의 유연성이다. 일본 기업들은 대규모 자본 투입이 필요한 해외 농업 사업에 과감하고도 유연한 투자 전략을 구사했다. 하이라이프 사례에서 이토추 상사는 처음 33.4% 지분을 취득한 뒤 추가로 지분을 늘려 49.9%까지 참여했으며, 나머지 50.1%는 태국 CP Foods가 인수해 공동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일본 측은 경영권을 공동으로 행사하더라도 안정적 공급망 확보를 위해 전략적 투자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자본 구조의 유연성은 일본 기업이 해외에서 신뢰를 얻고 리스크를 분담하는 데 기여했다. 동시에 경영 참여를 통해 일본 수요에 맞춘 생산 조정이 가능하므로, 결과적으로 일본 시장에 필요한 물량을 확보하는 이점도 누렸다. 일본 정부도 식량안보 차원에서 종합상사의 이러한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일부 금융 지원이나 외교적 지원을 뒷받침했다.

 

둘째는 계약사육 및 계열화 모델의 활용이다. 일본은 국내에서도 계열화를 통해 생산성을 높여온 바 있으며, 해외에서도 계약사육 모델을 활용했다. 일본햄은 호주, 태국 등지에서 계열 농장 또는 위탁사육 계약을 맺어 운영함으로써, 현지 생산을 통제하면서도 직접 경영에 따른 부담을 줄이는 전략을 취했다. 이러한 계약사육 모델은 사육지의 낮은 비용과 일본 기업의 기술/자본을 결합하는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해외 계약농장의 돼지는 일본의 사양관리 기준을 따라 키워지고, 수의사 파견이나 기술 지도로 위생·질병 관리도 지원받았다. 이러한 계열화/계약사육은 소유 부담 없이도 생산기반을 확장할 수 있게 해주어, 일본 기업의 해외 진출 리스크를 낮추는 한편 안정적 물량 확보를 가능케 했다. 현지 농가로서는 일본 기업이 제공하는 계약 사육을 통해 판로와 기술을 확보하므로 윈윈 관계가 형성되었다.

 

셋째는 프리미엄 브랜드 구축과 현지화 전략이다. 일본 양돈업계는 품질 경쟁력과 브랜드 마케팅을 해외 진출에서도 활용했다. 하이라이프 포크의 일본 내 브랜드화 사례에서 보듯, 현지에서 생산되었지만 일본 브랜드로 인식시키는 전략이 두드러진다. 일본 소비자들은 전통적으로‘ 국산 선호’ 경향이 강했으나, 일본 기업들은 해외 생산 고기라도 일본의 관리하에 만들어진 프리미엄 제품임을 강조하여 신뢰를 구축했다. 하이라이프는 도쿄 브랜드 숍 개설, 요리교실 개최 등 적극적 마케팅으로 수입육에 대한 인식 전환에 성공했고, 현재 일본 내 고급마트에서도 ‘HyLife Pork’를 하나의 고급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다. 일본햄 등도 해외 생산 제품에 자사 브랜드를 부여해 판매함으로써, 소비자 입장에서 일본 브랜드를 구매하는 경험을 제공했다. 이는 단순한 원자재 수입이 아닌 브랜드 육류의 수입이라는 차별화를 낳았다.

 

넷째는 수입대체와 식량안보 연계 전략이다. 일본의 해외 양돈 투자는 국내 수급 안정과 식량안보 전략과 맞닿아 있다. 일본은 돼지고기 소비량이 많고 자급률이 낮아 수입이 불가피한데, 무작위 수입보다 직접 관리하는 수입선을 확보함으로써 가격·물량 통제권을 어느 정도 얻었다. 일본은 돼지고기 수입 시 수입육 평균 가격이 일정 기준 이하로 떨어지면 관세를 부과해 국내 시장을 보호하는 게이트 프라이스 제도를 운용해왔다. 이런 보호막 아래에서 일본 기업들은 해외에서 생산된 돼지고기를 적정 가격에 수입함으로써, 너무 저가의 수입육 유입을 막고 국내 시장 교란을 방지했다. 동시에 국내 생산이 부족한 부분은 자기 기업의 해외 생산으로 채우는 수입대체 효과를 노렸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세계 최대 돼지고기 수입국 중 하나이지만, 그 수입의 상당 부분에 자국 기업의 손길이 닿아 있어 위기 시 대응력이 높다.

 

【이번 10월호에서는 한국 양돈산업의 해외 진출 길을 일본 사례에서 찾아보았다. 이어지는 다음 11월호에서는 한국 한돈산업의 해외 진출 전략에 대한 체계적 접근 방향에 관해서 소개할 예정이다.】

 

 

월간 한돈미디어 2025년 10월호 95~1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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