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하며
음악 시장에서 트로트, 댄스/발라드, 그리고 K-POP이 각기 고유의 특징을 가지며 공존하듯 돼지고기 소비 시장도 전통적 소비 형태에서 세련된 프리미엄 소비, 그리고 대담하고 혁신적인 엔터테인먼트 소비로 설명할 수 있다. 다소 무리가 있긴 하지만 세 가지 음악 장르를 돼지고기 세 가지 소비 장르에 비유하여 시장의 흐름을 분석해보고, 앞으로 시장이 나갈 방향을 설명해보고자 한다.
돼지고기 소비를 음악 장르에 비유해서 설명하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현재까지 나와 있는 수많은 음악을 부족함 없이 소비하며 즐기지만, 새로운 음악은 계속해서 시장에 나오고 있고 대중은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하고 있다. 돼지고기 시장도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는 항상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식재료인 돼지고기는 “맛있는 고기를 먹는 것”을 넘어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추구하는 형태로 점점 진화하며 변모하는 중이다.
2. 트로트(집밥, 단체급식, 일반식당) : 돼지고기 소비의 전통적 장르(점유율 65%)
트로트는 한국 대중음악의 뿌리라고 알려져 있다.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특유의 리듬은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따뜻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아무리 음악 장르가 분화되고 발전하더라도 트로트가 가진 일명 “뽕끼”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돼지고기 소비 시장에서도 트로트는 바로 생활 속에 자리한 전통적인 돼지고기 소비방식을 의미한다. 집밥을 위한 정육점이나 마트에서 구입하는 돼지고기, 단체급식에서 소비하는 돼지고기, 그리고 삼겹살집, 감자탕집, 돼지국밥집 같은 전통적인 식당에서 돼지고기는 경기에 따른 큰 유행 타지 않고 면면히 이어지는 소비채널과 소비방식이다. 그래서 트로트에 비유했다.
(1) 메인 타이틀 곡, 삼겹살
트로트가 삶에 지친 우리의 정서를 위로해 주듯 전통적 돼지고기 소비는 한국인의 식문화에서 안정감을 주며 중심을 잡아준다. 주말 가족 모임에서 가장 많이 즐기는 메뉴인 삼겹살 구이는 월평균 가구당 2.3회 삼겹살을 구워서 먹으며, 전체 육류 소비의 43%를 차지하는 돼지고기는 가족 외식의 1순위를 수십 년째 점하고 있다. 1회 모임 평균 600g을 소비하는 삼겹살은 흔하다고 불평하면서도 없으면 허전한 그런 메뉴이다. 우리 일상의 서브 타이틀곡은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이다. 김치찌개는 가정식 1위로 월평균 3.5회 조리되고 있다.
그 많은 메뉴를 다 제치고 직장인 1위 메뉴 또한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이다. 이어서 제육볶음은 직장인 선호 요리 2위, 돈가스도 6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니 돼지고기 없이는 우리 식생활은 마비될 지경이다. 돼지고기 국밥 한 그릇에서 느껴지는 구수한 풍미와 감자탕에서 느끼는 부드러운 고기와 칼칼한 뼈국물의 조화는 한국적인 맛의 정수를 보여준다. 술자리에서 트로트 빠지면 흥이 나지 않는 것과 너무나 닮아있다. 특히 중장년층은 전통적인 소비방식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데, 이들의 구매력은 여전히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축을 이룬다.
(2) 다양한 계절별 타이틀곡
벚꽃 피는 계절 야외에선 숯불에 돼지고기가 익어가야 제맛이다.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모여 있는 자리에는 그 한가운데는 숯불에 익어가는 고기가 사진에 등장한다. 봄에는 수육과 나물도 흔히 식탁에 올라오곤 한다. 삼겹살을 잠시 뒤로하고 여름엔 시원한 식당에서 보쌈, 족발 류가 더위를 피하는 메뉴가 된다. 다시 가을 캠핑시즌이 돌아오면 자연 속에서 다시 바비큐 통에 고기가 익어가며 깊어가는 계절을 즐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초겨울이 가까워지면 김장철 모락모락 김 올라오는 수육이 인기를 얻는다. 배추값이 오르고 양념값이 뛰면 김장철 돼지고기 수요도 줄어들 것이 예측되긴 한다. 다시 추운 겨울이 되면 연말 회식 시즌이고 삼겹살을 다시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송년회의 메인 메뉴가 된다. 그러나 이 또한 약한 술을 찾는 세대가 늘게 되면 서서히 주인공의 자리를 내주게 될 처지가 될지 모른다. 연말연시 술과 관련한 해장 메뉴로 김치찌개와 돼지국밥, 순대국밥, 뼈해장국은 숙취와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힘이 된다. 돼지고기 없으면 어쩔 뻔했을까 싶은 정도이다. 돼지고기는 어떤 계절에도 소비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식재료이다.
(3) 도전과 변화의 필요성
그러나 트로트와 같은 전통적 소비방식은 안정적이지만 젊은 세대의 관심을 지속해서 끌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다. 젊은 소비자들은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추구하며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돼지고기 소비 형태가 계속 사랑받기 위해서는 현대적 감각을 더한 변화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한돈을 생산하는 단체의 전폭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단순히 출하만 하고 유통과 소비는 알아서 하라는 자세는 사업의 영속성을 보장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지속적인 PR과 마케팅 활동이 따라야 안정적인 시장을 지킬 수 있다. 또한 수입육의 저가격 공세를 견디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이제 대중이 서서히 값비싼 국산 삼겹살에 지겨움을 느끼며 새로운 변화를 원하고 있다는 신호는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장기 불황에 접어들게 된 지금 시장 확대보다는 안정적인 시장규모를 지키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3. 댄스와 발라드(대중 브랜드 식당): 돼지고기 소비의 세련된 장르(점유율 25%)
댄스와 발라드는 각각 흥겨움과 감성을 기반으로 대중성과 세련미를 갖춘 장르이다. 돼지고기 소비 시장에서도 댄스와 발라드는 브랜드화되고 특화된 프리미엄 돼지고기 소비를 말한다. 고급스러운 품질과 섬세한 조리법, 세련된 분위기의 매장을 통해 돼지고기 소비의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형태이다.
(1) 브랜드화된 프리미엄 돼지고기 시장의 등장
두꺼운 삼겹살을 내세워 프랜차이즈화에 성공한 하남돼지가 한 가지 사례가 될 것 같다. 소비자들이 돼지고기를 단순한 식재료가 아닌, 특별한 경험과 고급스러운 서비스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주목받았다. 이는 숙성 삼겹살, 제주 흑돼지, 이베리코 돼지고기와 같은 프리미엄 제품의 인기로 이어졌다. 숙성, 특수 사료 급여, 방목 사육, 로컬 브랜드 강화 등 차별화된 생산 방식을 통해 돼지고기의 품질을 높이는 노력이 점점 더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프리미엄 돼지고기는 단순히 맛의 차이를 넘어, 건강과 환경까지 고려하는 소비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소비자들은 무항생제 돼지고기나 친환경 인증 제품에 더 큰 관심을 보이며, 고기를 선택할 때도 가치 소비를 선호한다.
(2) 메뉴의 다양화와 부위별 재발견
댄스와 발라드처럼 돼지고기의 소비도 점차 다채롭게 변하고 있다. 기존에 삼겹살과 목살이 중심이었던 소비는 항정살, 갈매기살, 등심, 뒷고기 등 다양한 부위로 확장되고 있다. 삼겹살을 교차 숙성하거나, 수중숙성, 건조숙성 혹은 가압숙성하는 특수한 방법으로 가공한 메뉴는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맛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뒷고기의 부상, 목살을 스테이크로, 돌돌 말아 냉동한 삼겹살, 캠핑용 돈마호크의 부상, 등심을 두꺼운 돈카츠로 변신시키는 등의 다양한 창의적 시도들은 돼지고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마치 발라드가 새로운 감성을, 댄스가 새로운 흥겨움을 가미하여 소비자의 음악적 경험을 넓혀주는 것과도 닮았다.
4. K-POP(프라이빗 브랜드 식당): 돼지고기 소비의 혁신적 장르(점유율 10%)
K-POP은 단순히 음악 장르를 넘어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돼지고기 소비에서도 K-POP과 같은 혁신적이고 대담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결합한 소비 형태가 돼지고기 시장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비록 시장규모는 제한적이고 크지 않지만, 창의적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트렌드를 선도한다.
(1)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소비하는 시대
K-POP처럼 돼지고기 소비에서도 경험의 가치가 중요해졌다. 최근 등장한 체험형 레스토랑들은 고기를 굽는 과정을 하나의 퍼포먼스로 연출하며 소비자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산청숯불가든, 몽탄, 숙성도, 유용욱 바베큐연구소 같은 매장은 고기를 먹는 행위 자체를 엔터테인먼트로 탈바꿈시킨다. 산청숯불가든을 보면서 레트로 감성도 혁신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파격적인 새로움만이 소비자가 원하는 엔터테인먼트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혹은 레트로 감성을 살린 분위기, 스토리텔링이 담긴 메뉴, 그리고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기 좋은 독특한 플레이팅은 젊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MZ세대는 이런 매장을 단순한 식당이 아닌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인식한다.
(2) SNS와 라이브 커머스의 확산
SNS와 라이브 커머스는 K-POP처럼 돼지고기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를 빠르게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유명 셰프나 인플루언서를 내세운 라이브 방송을 통해 소비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제품에 대한 정보를 직관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셰프가 고기를 직접 구워 보이며 설명하거나, 고기 구매 후 요리하는 법을 알려주는 콘텐츠는 소비자들의 흥미를 끌고 구매를 유도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라이브 커머스에서는 특히 1인 가구를 겨냥한 소포장 제품, 간편 조리 수육, 혼술용 돼지고기 세트 같은 맞춤형 상품은 현대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유튜브에서는 재능있는 크리에이터(고기남자, 정육왕, 육식맨 등)들이 돼지고기와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맛집 탐방, 조리법 소개, 고기의 품질을 비교하는 영상들은 소비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며, 돼지고기에 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영상 콘텐츠를 자주 소비하면 직접 체험해 보려는 수요도 자연스럽게 늘기 마련이다. 어떤 인위적인 캠페인보다도 저변확대를 위해서는 유용한 콘텐츠가 많아야 사회적인 소비 행동이 직접적으로 일어나 시장이 서서히 커지게 된다.
5. 결론 : 세 가지 장르가 만들어가는 돼지고기의 미래
한국의 돼지고기 소비 시장은 트로트(65%), 댄스와 발라드(25%), 그리고 K-POP(10%)에 비유되는 장르가 조화를 이루며 발전하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은 여전히 시장의 중심을 지키고 있으며, 세련된 프리미엄 소비와 혁신적인 엔터테인먼트 소비가 트렌드를 주도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시장규모는 크지 않지만 트렌디한 엔터테인먼트 중심의 돼지고기 소비는 전통적이고 대중적인 소비방식에 영향을 주면서 시장의 유행 흐름을 주도해 나갈 것이다.
앞으로도 돼지고기 소비는 다양한 소비층의 요구를 충족시키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음악 장르처럼 계속 진화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돼지고기는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삶의 경험과 가치를 제공하는 중요한 미디어(매개체 혹은 도구)로 확고한 위치를 점할 것이다. 돼지고기 소비의 미래는 집밥의 가치를 기본으로 한 전통과 대담한 혁신이 어우러진 새로운 하모니 속에서 그려질 것이다. 우리의 식탁이 돼지고기를 통해 얼마나 풍성하고 흥미로워질지 기대해본다.
월간 한돈미디어 2024년 12월호 62~68p 【원고는 jynam@naver.com으로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