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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 미투가 시작되었다(한돈미디어 2024년 6월호)

김 태 경 박사 / 식육마케터
건국대학교 미트컬쳐비즈랩

 

지난 3월 삼겹살 데이를 앞두고 정부에서 삼겹살 품질관리 매뉴얼을 배부해서 겉지방 1cm 삼겹살 유통을 강요했다. 유통업체들은 정부의 방침에 이의를 제기하지도 못하고 두당 2kg 정도의 지방을 더 쳐냈다. 1년에 도축되는 돼지 18,500,000두에 2kg씩 지방을 추가로 제거하면 3만7천톤이다. 금액으로는 약 5천억원 정도가 될 것이다. 2월에 농림부, 한돈협회 등 한돈 관계자들이 모여서 공청회를 하고 정부의 품질관리 매뉴얼을 수정하기로 협의했던 것 같은데, 그 소식은 들리지 않고 이번에 제주도에서 과지방 삼겹살 논쟁이 터졌다.

 

제주도 지사까지 나서서 무마하려 하다가 제주도 불매운동(?)으로까지 사태가 번지고 있다. 이상하게 모든 방송에서 제주도 과지방 삼겹살에 대한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마치 무슨 정치적 이슈가 생기면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고 인기 연예인 연애사나 마약 사건이 뉴스가 되듯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삼겹살이 이제 삼겹살 미투 사건이 되었다.

 

YTN 라디오 방송 슬기로운 라디오 생활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

제주도 비계 삼겹살에 대해 인터뷰 요청이 왔다. 사실 과지방 삼겹살 문제는 입장에 따라 좀 예민하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모처럼 제주도 여행 가서 비싼 돈 내고 비계가 70%가 넘는 흑돼지 삼겹살을 만나면 화가 나고 황당할 것이다. 교환을 요청해도 무시당하면 정말 SNS에 고발하고 싶었을 것이다.

 

식당에서는 비싼 흑돼지 삼겹살을 샀는데 과지방을 정리하다 보면 팔 삼겹살이 얼마 안 된다. kg당 18,000원인 흑돼지 삼겹살 수율을 감안하면 2만5천원이 넘어가면 임대료도 오르고, 인건비도 오르고, 식자재비도 오르는데 비싼 흑돼지 수율마저 안 나오면 장사할 맛이 안 날 것이다. 기분 같아서는 비계 삼겹살 다 모아서 유통업체에 반품하고 싶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유통업체 입장은 식당에서는 과지방 삼겹살을 반품한다고 난리고 제조사에서는 농축산물이 무슨 공산품도 아닌데 완벽한 것이 어디 있냐고 한다. 거래처를 바꿀 수도 없다. 제조사 입장에서 농장에서 출하된 돼지나 경매장에서 경매받은 지육의 삼겹살이 과지방인지 모른다. 정육점, 식당에서 작업하다 보면 과지방 삼겹살이 나온다고 유통업체를 통해 반품해 달라고 하지만, 그 금액이 상상 이상이라 저마진 산업이 식육산업 속성상 반품이란 없는 것이다.

 

양돈농장 입장에서는 돈방 안의 돼지가 알아서 사료를 먹으니 개체마다 삼겹살 지방함량이 다르다. 지금까지 돼지를 출하하는데 품질에 대한 특별한 요구 사항은 없었다. 아마 우리나라 양돈업이 산업화하면서 품질을 차별화해서 가치를 평가받은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다들 할 말이 있다. 누군 맞고 누군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방송 출연, 인터뷰를 나름 상당히 많이 해 봤는데 예민한 문제를 생방송으로 인터뷰해야 하니 좀 떨렸다. 나름 사전에 질문지를 받아 전날 밤 답을 다 정리해 봤다.

 

 

막상 방송에서 진행자는 즉석 질문들을 쏟아내고 아주 잘 대답한 것 같다. 작가는 재미있었다고 말하고 유튜브에도 정리되어 올라왔는데 댓글이 모욕적이다. 필자가 식당이나 생산자들 편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필자는 욕을 먹어도 적어도 이번 생에는 식당 사장이나 생산자들 편에 설 것이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줄 알았던 사랑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40년간 우리가 사랑했던 삼겹살에 대한 사랑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이제 권태기 같은 애증이 생겨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삼겹살이 우리 현대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리하면서 ‘삼겹살의 역사’라고 책 제목을 정하지 않고 ‘삼겹살의 시작’이라고 정한 이유는 삼겹살에 대한 우리의 애정이 식는 날이 올지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삼겹살의 종말’을 정리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런 필자 생각이 불행하게도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복합 유기 생산체인 돼지 한 마리에 삼겹살의 수율은 10% 정도지만 경제적 가치는 돼지 한 마리의 40%가 넘어간다.

 

만약 삼겹살의 인기가 무너진다면, 한돈 삼겹살이 팔리지 않는다면, 한돈 관련 식육산업 전후방에 큰 경제적 충격을 주게 될 것이다. 아니 지금 이미 충격을 받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과지방 삼겹살의 문제, 이건 우리 모두 미트리터러시(고기 정보이해력) 부족 때문이다. 정부의 삼겹살 품질관리 매뉴얼 지방함량이 아니라 겉지방 cm로 규정을 정했다. 지방 20%가 함유된 돼지고기를 먹고 싶으면 겉지방이 붙어 있는 목심을 먹으면 되는데 지방 없는 삼겹살을 제시하는 건 그들의 고기 정보이해력이 부족해서이다.

 

돼지고기 하면 무조건 삼겹살밖에 모르는 사람들도 문제이다.

배고팠던 시대에는 그냥 돼지고기면 다 좋았다. 이걸 필자는 마켓 1.0시대라고 한다. 마켓 1.0시대 1908년 포드가 검정색 T-1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면서 미국의 자동차를 대중화시켰던 시대이다. 값싸고 어느 정도의 기능만 있으면 다 좋아했다. 모두가 자동차를 타기 시작하고 20년쯤 지난 1928년 GM이 다양한 색상과 기종의 자동차를 출시하면서 자동차 시장의 마켓쉐어 1위는 GM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는 개성 없는 검정색 T-1 자동차를 원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돼지고기 시장은 그냥 삼겹살이면 다 좋아하는 마켓 1.0시대였다면 이번 삼겹살 미투를 통해 돼지고기 마켓 2.0시장이 열린 것이다. 이제 삼겹살도 자신의 기호에 따라 선택하는 시대가 되었다. 지방이 과한 삼겹살이 맛있다고 찾는 사람들 있을 것이고 지방이 적은 삼겹살을 찾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제 삼겹살이라고 단 하나의 이름을 판매하는 시대는 지났다. 진하고 깊은 삼겹살, 지방이 적고 가벼운 삼겹살 등 지방함량에 따라 삼겹살을 선택하는 시대가 되었다. 마치 GM의 다양한 색상과 형태의 자동차를 미국인이 선호했던 것처럼 우리 한돈시장도 어떻게 변화할지 다시 생각해야 할 때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더 맛있는 돼지고기의 시대로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해 왔다. 이번 삼겹살 미투 사건을 통해 우리 스스로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 필자의 유튜브 : 유튜브에서 「고기만」 또는 「meat10000」을 검색하면 된다.

 

 

월간 한돈미디어 2024년 6월호 127~132p 【원고는 brandkim@naver.com으로 문의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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