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 입장에서는 이번 이모저모가 “월간 한돈미디어 11월호”에 게재되니까 2025년 마무리 인사도 포함하였다. 필자가 지난 9월호에서 이야기하였던 텃밭 이야기를 기억하는 독자가 있는지 모르겠다. 두둥! 지난 8월 30일에 필자가 애지중지(?)했던 밤고구마를 수확했다. 약 2평에서 많은 양은 아니지만, 주변 지인들 몇 분에게 조금씩 인사도 하고 집에서 몇 번 고구마를 쪄서 몇 끼를 해결할 수도 있었다. 필자 아내는 고구마가 너무 작다고 타박을 하였지만, 기대했던 흙 속의 첫 번째 큰 수확물이었기에 아내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기쁨은 더욱 컸다. 이어서 가을 무와 내년 텃밭이 더욱 기대된다.

아무런 지식도 없던 필자가 유튜버 교육과 경험 많은 선배의 힘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또 하나 추가했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끼듯, 후배 축산인들도 지금의 경험 하나하나가 모여 이 나라의 축산을 이끌어 가는 전문 축산인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필자는 사료회사에서 오랫동안 영업을 했다. 아니다. 정년을 맞이할 때까지 거의 영업했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는 해에 사료회사 선배의 추천으로 13명 중 2명을 뽑는 경쟁을 통해 사료회사 영업쪽으로 입성했다. 이제는 꽃길(?)만 걸을 줄 알았는데 더 힘든 과정이 있었다. 13개월간의 영업 훈련이 아닌 무지막지한 신입사원 교육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신입사원이 공부할 자료는 회사 내 축종별 팸플릿과 축종별 월간 잡지가 전부로, 복사기 앞에서 월별 중요한 내용을 찾아내어 긴 시간 복사했다. 복사한 것을 가지고 읽고 공부하고 발표 자료를 직접 네임펜으로 OHP 필름에 작성하여 발표했다. 거기에다가 축종별 PM 교육을 받고 또 정리하여 발표하고 정말 끊임없는 반복을 하였다.
그리고 생각나는 두 번째 이야기는 자동차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 당시에는 차 안에 내비게이션이 없었다. 출장 교육을 가면 차에서 자는 즐거움이 있을 걸로 예상했다. 하지만 우리의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조수석에서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 출발 IC에서 다음 IC까지 몇 Km인지 구간마다 차량 내 주행거리를 적고 또 얼마나 걸리는지 시간도 체크하였다. 또한 운전할 때는 초보 운전 때 습관이 평생 간다고 차선 변경 시 좌·우 방향등을 켜는 것, 터널에서는 주행등을 켜고 차선 변경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등 정말 잠잘 틈을 주지 않고 잔소리 같은 교육으로 채워졌다. 물론 출장 후 출장 교육 보고서는 당연하였다. 이러한 13개월의 길었던 교육은 그때는 몰랐지만 정말 필자에게는 지금의 필자가 있기까지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이쯤에서 먼저 두 분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 “이*찬 선배님”, “전*남 교장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항상 건강히 지내십시오.
필자의 초짜 영업 시절은 실수 투성이었다. 지역에 발령받고 현장에 가보니 대리점에서 농장 사장님들이 “오늘 300원 나왔어.” 또 어떤 날은 “오늘 500원 나왔어”라고 하였다. 이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했다. 그렇다고 지역과장의 자존심이 있어서 모른다고 물어 볼 수도 없어 “아! 예 예”하며 답답하면서도 웃어넘기기를 한 달을 하였다. 나중에 농장 사장님들이 앞의 천원 금액을 무시하고 우시장에서의 한우 시세 대화를 하는 것인 줄 알고 나서야 혼자 “훗”하고 웃었다. 또한 초창기 라떼 영업 시절에는 컴퓨터 사용이 거의 없었다. 대리점 자금계획서 및 재무제표 작성 시에는 컴퓨터 사용을 절대 못 하게 하고, 오직 계산기, 연필, 지우개로 줄 칸이 있는 A3 용지에서 무식한 방법으로 계산하고 적고 지우고 또 수정하였다. 거의 한 달을 씨름하다 보니 나중에서야 대리점 자금의 흐름을 머릿속에서 읽게 되었다.
나중에는 자회사 운영 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또 생각나는 웃지 못 할 일은 농장에서 질문하면 13개월간의 혹독한 교육을 받았는데도, 금전적인 부분으로 직접 연결되다 보니 자신이 없어서 정확한 대답을 못 해 얼굴만 붉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차량 트렁크에 전공 서적이랑 교육 때 받은 자료 파일집을 넣고 다니면서, 농장 방문 전 30분 정도 차 내에서 공부하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농장에서는 30분간 공부한 내용 위주로 이야기하고는 얼른 나오는 것이었다. 3년 가까이 그렇게 하다 보니 차량 트렁크 내 전공 서적과 자료 파일집은 마침내 자리를 잃게 되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후배님들은 필자보다 더 잘할 수 있다. 남들이 잘하는 걸 닮아가려 하지 말고 후배들이 잘 할 수 있는 걸 찾는 시간을 만들어 가며, 또한 실력을 키우자고 스스로 노력하는 것은 각자 차이가 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주변 교육 환경을 보면 충분히 가능하다. 필자는 믿는다. 그러므로 한두 번의 시행착오에 의기소침하지 말고 다시는 시행착오를 겪지 않겠다는 마음가짐, 그리고 자신감이 미래의 우수한 리더로서 거듭나지 않을까 싶다.
필자는 서울 및 수도권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 지방에서 공부하고 석·박사는 하기 싫어 취업을 결정했고, 필자가 원했던 곳은 사료회사였다. 그래서 사료회사에서 “지역과장”이라는 호칭을 갖고 지금까지의 머나먼 여정이 시작되었다. 돌이켜 보면 영업 초창기 필자의 목표는 한 가지인 걸로 기억한다. “실력을 쌓자! 그러면 농장들이 알아준다.” 현장을 부딪치면서, 그리고 모르는 것은 공부하면서 또한 시행착오 겪은 것은 필자의 것으로 흡수하면서 3년 동안은 정말! 진짜로! 열심히! 한 것으로 기억된다. 이때 현장에서 열심히 부딪치면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신 필자의 첫 번째 판매 본부장이신 “주*철 이사님”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히 지내십시오.
필자는 약 3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얻은 경험이 30년 이상을 먹여 살렸고, 지금의 필자로 이 자리에 있게 만든 것 같다. 처음부터는 아니었지만, 현장에 가면 많이 부딪친 것이 수의 즉 가축질병 쪽이었다. 그때마다 부검하는 것도 가르쳐주고, 증상에 따른 샘플 채취 및 결과를 가지고 체계적으로 문제점 해결 방법을 진행하는 것도 반복을 통해서 정말 많이 배웠다. 나중에는 나름대로 가벼운 상황은 홀로서기까지 하게 되었다. 이 또한 홍성에서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활동 중인 “신*덕 원장님” 덕분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가장 즐겁게 보람되게 일했던 시기가 “지역과·부장” 시절이 아닌가 싶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대리점 및 농장들을 방문하였다. 대리점 및 농장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일들을 해결해 나갈 때 기쁨과 보람은 필자의 인센티브와도 비례되었다. 이는 은행 통장의 숫자로 나타나면서, 행복해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면 방전됐던 힘이 충전되어 아침에 일어나 다시 현장 속으로 달려가게 됐다.
또 하나 운이 정말 좋았던 것은 축종별 전문 지역부장이 아닌 전 축종 지역부장을 하다 보니 양어, 닭, 오리, 돼지, 소, 특수동물(양견, 말, 사슴) 등 심지어 우렁이 사료까지 판매해 보았다. 이후 좀 더 전문적으로 선택하게 된 것이 돼지와 소(낙농, 비육)였다. 그래서 나중에 좀 더 책임을 지는 위치에서 경험을 충분하게 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자회사 대표로서 한우 및 육우 위탁 비육 사육도 하고, 돼지도 위탁 사육 및 돼지 유통까지 하게 되었다. 다시 되돌아보니 “라떼의” 긴 여정을 정리하는 시간이 된 것 같다. 축종별 PM이 아니었기에 논문 내용의 측정 결과를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30여 년 동안 많은 일을 경험해 본 것 같다.
끝으로 책임을 지는 위치에서, 그리고 자회사 대표로서 일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조*윤 상무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실명으로 나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필자가 현역으로 있을 때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시고,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는 모든 분께도 2025년을 마무리하면서 감사드립니다. 오는 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한해 한해가 갈수록 제일 중요한 것이 “건강”입니다. 2026년에도 항상 건강히 지내십시오.

월간 한돈미디어 2025년 11월호 98~101p 【원고는 ☞ jjhpak0420@naver.com으로 문의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