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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맛있는 돼지고기 시대로 패러다임 시프트

김 태 경 박사 / 식육마케터

우리는 일상에서 패션(유행), 트렌드, 패러다임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패션, 트렌드, 패러다임이 비슷한 뜻이면서도 시간적인 의미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아주 다른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시간적인 측면에서는 패션이 가장 짧고, 트렌드는 패션보다는 길고, 패러다임보다는 짧다.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가 매해 말 내년의 트렌드에 관한 책과 강연으로 인기몰이해서인지 트렌드를 일년 정도의 유행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트렌드는 10년이 넘는 기간일 수도 있다.

 

패션, 트렌드, 패러다임을 예를 들어서 설명하면 잠깐 유행했던 미니스커트나 장발은 패션이다.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삼겹살 로스구이는 일종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1908년 포드의 검정색 T-1 자동차로부터 지금까지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서서히 전기 자동차로 변화하고 있는 건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올드노멀이니 뉴노멀이니 하는 건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봐야 한다.

트렌드는 같은 선상 위에 있다. 1950년대 돼지갈비가 외식시장에 등장했을 때 습식 조리 중심이던 돼지고기 외식시장의 큰 변화가 시작되었고, 이게 아마 돼지고기 외식 소비의 패러다임 변화였는지도 모른다.

 

1970년대에 양돈산업이 현대화되면서 전업농이 등장하고 배합사료를 먹이는 농장이 늘어나고 거세가 이루어졌다. 돼지고기 냄새가 줄어들면서 돼지고기를 그냥 구워 먹는 삼겹살 로스구이로 트렌드가 변화했다. 이런 트렌드의 변화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돼지고기는 전 세계적으로 서민의 고기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양돈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돼지고기는 소고기의 대체재였다. 양돈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생산성이다. 어떻게 하면 싸게 키울 수 있는지에 모든 역량 기울이고 있다. 아마 1970년대 양돈농장이나 오늘의 양돈농장이나 돼지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양돈장 경영의 최고 관심사다.

 

몇 해 전 대학원 수업을 하는데 그 강의는 이상하게 수강생의 90%가 한돈산업과 직간접적인 관계가 있는 학생들이었다. 돼지의 품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대를 이어 한돈농장을 하는 학생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교수님, 생산비를 더 투입해 맛있는 돼지고기를 생산하면 시장에서 돼지값을 더 주나요?” 이 질문에 필자는 답을 못했다.

 

몇 해 전까지는 돼지고기는 없어서 못 팔았다. 지금도 생산된 돼지를 농장에서 판매하지 못하는 때는 없다. 굳이 맛있는 품질의 돼지고기를 생산하는 것에 대해서 한돈농장에서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 어떤 수입 돼지고기도 한돈을 이길 수 없었다.

 

우리는 국산 돼지고기 한돈을 좋아했다. 이베리코 쇼크라고 하는 일이 벌어졌었다. 스페인 산 이베리코 돼지고기를 세계 4대 진미라고 극찬을 하고 이런 돼지고기는 처음이라고 사람들이 난리였다. 한돈협회에서도 급히 스페인 이베리코 돼지고기 시장을 조사하려고 다녀오고 S대 모 교수는 졸지에 이베리코 돼지 전문가가 되어 이베리코 돼지 품종이 달라서 맛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필자 생각이지만 이베리코 돼지는 품종보다는 18개월이라는 사육일수와 방목, 그리고 도토리 사료가 맛의 차별점을 만드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 제주 흑돼지도 18개월 키우고 방목하면 이베리코 돼지 이상으로 맛있다.

 

스페인에서 연간 10만톤 정도의 이베리코 돼지고기가 생산되고 7만톤은 스페인 내에서 소비되고 3만톤 정도가 전 세계로 유통된다. 우리나라 여기저기 식당에서 이베리코 돼지고기를 판매한다. 수입량과 소비량을 전수 조사하면 차이가 크게 나지 않을까? 이베리코 쇼크도 한때의 패션으로 지나갔다. 이베리코 돼지고기의 인기가 시들하다. 요즘은 베트남에 이베리코 돼지고기가 유행이다. 한인타운 고깃집들이 거의 다들 이베리코 돼지를 팔고 있다.

 

2020년 뒷다리가 남는다고 난리가 났었다.

코로나로 단체급식, 학교 급식 물량이 줄어서라고 이야기한다. 분석해 보니 2019년 과잉 수입으로 돼지고기가 남아돌아서 뒷다리 재고가 늘었다. 올해에서는 삼겹살이 과잉 수입되고 있다. 가을에는 삼겹살이 남아돌지도 모른다.

 

물가가 올라가니 정부에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돼지고기, 소고기 가격을 잡겠다고 발표를 한다. 해방 이후 늘 육류의 가격은 서민 경제의 큰 지표가 되었다. 이승만 시대도 박정희 시대도 전두환 시대도 다들 육류의 가격에 신경을 썼다. 우리뿐만 아니라 북한의 김일성도 인민에게 이밥에 고깃국을 배불리 먹이고 싶어 했으니 고기 소비는 이데올로기 경쟁의 지표였는지 모른다. 참 올드 노멀한 정책이다. 통신비를 인하하거나 지하철 요금을 인하해 주는 것이 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인데 말이다.

 

해방 이후 돼지고기는 높은 소고기 가격을 억제하고 국민에게 값싼 육류 수급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1960년대 외화가 없던 시절 늘어나는 육식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잔반이나 농가 부산물 등으로 사육이 가능한 돼지 사육을 정부는 장려했다. 워낙 돼지고기의 인기가 높아져서 사육두수가 늘어나니 어쩔 수 없이 부족한 사료를 1970년대 중반부터는 많이 수입해서라도 돼지 사육두수를 확대해야 했다.

 

1950년 전쟁으로 156,000두 밖에 없었던 돼지 사육두수는 이제는 1,100만두를 넘었다. 경제가 발전하고 인구가 늘어나니 돼지고기 소비도 역시나 지속해서 늘었다.

 

2022년 저출산에 고령화로 이제 인구가 늘어날 것 같지 않다. 젊은 시절 삼겹살의 소주 한잔으로 돼지고기 소비를 주도하던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이 되면서 고기는 곧 삼겹살이고, 삼겹살은 기름이라는 인식으로 고기를 멀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어디를 봐도 돼지고기 소비는 더 늘지 않을 것이다. 반면 한돈농장은 2세 경영자들이 늘어서인지 돼지고기 가격이 좋아서인지 사육두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경제학 원론 첫 장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의하면, 수요는 줄고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은 내려간다.

 

국제 곡물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이게 단순히 전쟁 때문일까? 기후 위기가 가져온 식량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패러다임은 선상의 변화가 아니라 선 자체가 움직인다. 국제 곡물가격 패러다임이 높은 쪽으로 전환되었다. 이제는 코로나 이전 가격으로 영영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삼겹살 kg당 도매가격이 3만원이 넘었다. 이제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는 것도 서민들에게는 사치가 되어 버린 물가 앞에서 돼지고기의 소비는 급격히 감소할 수 있다. 미국도 일본도 돼지고기보다 닭고기를 많이 먹는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육류 소비 패러다임도 급격히 닭고기 소비로 전환될지 모른다.

 

이제 값싼 돼지고기를 생산하겠다는 생각은 올드 노멀한 낡은 생각이 되어갈 것이다.

이제는 생산비가 더 들어도 맛있는 돼지고기를 생산해서 맛으로 돼지고기를 찾는 사람들이 좋은 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월급이 오르지 않을 거니 비싸진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는 없다. 지금 우리가 한우가 비싸서 마음껏 먹을 수 없듯이 한돈은 비싸지만 맛있어서 조금만 먹는 고기로 가치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에베레스트 같은 고산을 등반하는 영화를 보면 대여섯 명의 등반팀이 절벽에서 조난해 로프에 매달려 있는 장면이 나온다. 모두가 살기에 힘이 모자라면 아래에 매달린 몇 명이 로프를 스스로 끊어서 동료들을 살리는 눈물 나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 우리 한돈산업도 통일 경제 체계가 되어 북한에 돼지고기를 공급하지 않는 한 사육두수의 축소를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육 규모가 줄어도 출하가격이 높고 이윤이 많이 생기면 산업의 규모는 유지될 수도 있을 것이다.

 

월간 한돈미디어 2022년 8월호 101~104p 【원고는 ☞ brandkim@naver.com으로 문의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