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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돈 고급화, 허상일까?

남 정 윤 발행인 / 미트뉴스

한돈 고급화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쓰려다 필자는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실제 한돈을 소비하는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한돈 고급화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돈 고급화라는 용어는 어디서 왔고 누가 사용하며 실체는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한돈 고급화가 어떤 개념인지 현장에서 답을 찾아보고 싶었다. 30년 넘게 육가공과 도매 유통업을 하는 중견업체 대표에게 한돈 고급화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그 대표의 의견으로는 한돈 고급화는 생산자가 만들어낸 개념 같다는 것이었다.

 

도매유통시장에서는 규격돈을 이야기하고 소비자는 국산 돼지고기 신선도와 맛, 안전에 대한 요구는 있지만, 고급화를 이야기하는 요구나 수요에 대해서는 특별한 의견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무항생제나 HACCP도 식품 안전에 관한 것으로 고급화 개념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1. 차별화의 결과가 고급화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한우 고급화와 비슷한 개념으로 만들어낸 용어가 아닐까 한다. 한우의 경우에는 수입소와의 차별화를 위한 전략을 추진하면서 자연스럽게 고급 이미지를 입게 된 경우이다. 고급화 추구 전략이 우선되어 고급화라는 결과를 낸 것이 아니다. 등급과 맛의 차별화 과정을 통해 고급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TV에 나오는 맛집 프로그램 소개를 보면 포맷이 거의 일정하다. 먼저 줄 서서 먹는 사람들이 나온다. PD는 그 원인을 음식 재료의 차별화, 긴 시간을 들여 완성하는 비법 요리 재료와 방법을 화면에 담는다. 식당은 그 과정을 손님에게 알리고 손님은 그 복잡한 조리과정을 알고 나서 맛에 대해 더 좋은 평가를 한다. 그리고 단골이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여 점점 더 잘되는 맛집으로 성장한다.

 

여기에는 싼 가격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는다. 이미 차별화가 되고 고급 이미지를 입었기 때문에 멀어도 오고 좀 비싸도 온다. 차별화를 추구하여 다른 곳보다 프리미엄을 얻게 되어 기억할만한 곳으로 새로 태어나는 과정이 맛집이 성공하는 거의 비슷한 패턴이다. 많은 양에 비해 값싼 가격으로 손님이 몰리는 식당 콘셉트 또한 차별화이다.

 

2. 피터 드러커의 조언

 

현재 상태보다 나아지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말한다.

 

 

피터 드러커의 조언을 따르면 먼저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있어야 관리할 수 있고, 관리할 수 있어야 개선할 수 있다고 한다. 참고로 이베리코 흑돼지 등급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살펴보면 좋겠다. 이베리코 흑돼지는 크게 세 등급이다. 등급을 나누는 기준은 혈통, 사육기간, 방목기간, 먹이 등이다.

 

최종 결과인 제품이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정에서 차별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생산과정을 주기적으로 체크하여 등급을 부여하는 것이다. 기준 자체는 다른 의견이 끼어들 여지가 없이 명확하다. 물론 운영상의 문제는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3. 기준 없는 고급화는 헛구호에 불과

 

모든 산업에서 공급자는 시장에서 발생하는 수요에 대응하며 사업을 영위해 나간다. 시장수요에 고급화가 있으면 그 요구에 맞게 공급하면 된다. 소비자가 잘 몰라서 고급화 수요가 없다면 수요를 만드는 노력도 물론 필요하다. 그럼 한돈 고급화는 무엇을 이야기하는 걸까? 과연 실체가 있는 용어인지 기준은 무엇인지 다시 궁금해진다. 시장 소비자가 더 고급스러운 한돈을 원하고 있는지 알아내려고 여러 자료를 둘러보았지만, 소비자가 고급화된 한돈을 원하는 자료는 찾지 못했다.

 

앞서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고 했다. 대다수 소비자가 한돈에 등급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한돈을 소비한다. 바로 등급 무용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생산하고 정산 단계에서만 필요한 등급이며 소비자에게는 확신을 가지고 설득하기 어려운 현재의 등급 상황을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한돈 등급을 매겨서 가격 차별화를 하며 판매할 수 없는데, 한돈 고급화라는 불확실한 개념을 주장하려면 고급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그 고급화에 대한 평가지표를 설정하면 될 일이다.

 

막연히 청소를 깨끗이 하자고 이야기하면 누구도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깨끗이 해야 하는지 물어보면 제각기 다른 청결 기준으로 청소를 이야기한다. 깨끗함에 대한 개념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4. 한돈에 대한 소비자의 의견은 명확

 

 

2019년 농촌진흥청이 조사한 자료이다. 소비자가 국내산 돼지고기를 구입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인은 맛, 위생 상태, 육색, 신선도 순이다. 중요 요인은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에 집중되어 있다. 불만족 정도가 높은 항목은 잡냄새와 가격, 위생 상태와 지방 두께 순이다. 오히려 돼지고기 브랜드와 맛에 대해서는 구매 시 고려 우선순위가 높지 않았다. 즉 소비자는 기본에 충실한 제품에 대한 제품 정도면 만족한다는 결과이다.

 

5. 미국 소비자의 의견도 비슷

 

 

돼지고기에 대한 자료는 미국에도 있었는데 소비자 설문조사 자료는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2006년 오하이오대학교 돼지고기 선호 특성 설문자료를 참고했다. 미국 소비자는 신선도, 안전도, 연도, 살코기 비중, 육색, 지방 함유량을 구매 시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 위생요인과 동기요인에 대한 이해 필요

돼지고기는 주로 위생요인, 즉 불만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면 기본적인 소비자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급화는 가격할인, 특별한 컷팅, 새로운 맛, 새로운 경험 등 주로 유통단계에서 발생하고 있다. 생산단계에서 품종 차별화, 사육과정 차별화, 사육기간 차별화, 사료 차별화 등 이베리코 등급 기준을 참고하여 고급화 지표를 세워야만 한돈 고급화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7. 맹목적인 제품개선, 소비자가 외면할 것이다.

 

 

여러분이 잘 아는 스위스 아미 나이프에 품질을 개선하여 필요한 기능을 추가하다 보니 141개의 기능을 가진 제품으로 나왔다. 물론 이 제품을 많이 판매하려는 생각으로 만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막연히 고품질이라는 대상을 바라보면서 고급화와 개선을 추구하다 보면 이런 비슷한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8. 고급화의 시작, 생산의 표준화와 생산과정의 차별화로부터

 

최종 품질도 중요하지만 생산과정에도 신경 쓰는 소비자들이 늘어났다. 유재석 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보면 이미 유명한 가수들을 새로 조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매력을 가진 그룹으로 만든다. 이러한 새로운 그룹 탄생과정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를 공감하게 만드는 것을 ‘프로세스 이코노미(과정경제)’라고 한다. 반면 유명 가수의 기존 히트곡을 듣는 것을 ‘아웃풋 이코노미(결과물 경제)’라고 한다. 기존의 방식과 달리 결과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차별화된 포맷으로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의 키포인트는 소비자의 정서적 참여의식과 과정에 대한 공감이다.

 

한돈산업의 목적인 고급화를 달성하려면 규격돈을 생산하는 표준화가 우선이며 품종, 기간, 방법 등의 차별화 추구해야 한다. 한돈 유통업체는 한돈 품질이 균일하지 않은 것을 항상 개선과제로 이야기한다. 표준화의 다음 단계가 차별화, 그리고 고급화라고 생각한다.

 

고급화는 이베리코의 사례에서 본 것처럼 새로운 가치를 가진 품종이나 엄격한 생산방식을 정하고 이를 만족시키는 제품을 신뢰하에 만드는 것이다. 거의 단일 품종인 한돈을 고급화하자는 주장은 말하기 쉽고 듣기 편한 주장이지만, 실행방식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허망한 주장이자 허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한돈 고급화의 근거나 기준을 생산자가 먼저 제시하고 이를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다면 가능하다. 모든 시장은 소비자 중심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월간 한돈미디어 2022년 6월호 82~87p 【원고는 ☞ jynam@naver.com으로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