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4월 보릿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항상 이 시기엔 올라가는 돈가를 부분육 판매가격이 따라가지 못해 많은 육가공업체가 고생한다. 특히 올해는 탄핵정국, 산불 이슈, 꽃샘추위와 트럼프 이슈까지 맞물려 여느 때보다 힘든 것 같다. 불안정한 시대를 반영하듯 소비 심리는 최악이다. 아예 움직임이 없다. 이렇다 보니 한돈 육가공사업을 지탱했던 삼겹 가격이 무너진 지 오래되었고, 그나마 대체 부위인 앞다리살, 원료육인 뒷다리살이 사업을 지탱해 주고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얼마 전 중견 육가공업체로 자리를 옮겨서 현재의 어려움을 더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든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한돈 육가공사업의 중심에서 한돈 소비의 확대, 한돈산업의 성장을 위한 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쓴다. 한돈 사양가에게 바라는 마음, 육가공이 해야 할 것들, 정부에 대한 바람을 써 보려고 한다.
1. 한돈의 소비
코로나 이후 많은 기고에서 한돈 소비에 대한 글을 쓴 것 같다. 매번 반복되는 것들이고 교과서적인 것들을 적었고 현재 많은 전문 잡지에서 비슷한 글들을 본다. 이 글에서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한돈 소비를 바라보려고 한다. 대부분 소비자들은 ‘한돈’을 인식하지 않는다. 그냥 도드람과 같은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한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돼지고기가 한돈이라고 인지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한우와는 그 결이 다르다. 그래서 한돈 소비의 변화를 본다는 것이 의미가 없다. 물론 최종 소비자 단계를 제외한 한돈 시장의 변화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소비자 관점의 변화/현황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돼지고기 소비를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보통의 소비자들은 식당, 정육점, 마트에서 돼지고기를 접한다. 식당에서는 삼겹살에 소주 한잔으로, 마트나 정육점에서는 캠핑용 고기나 집에서 먹을 제육볶음을 만들기 위해 돼지고기와 만난다. 식당에서 주로 만나는 것은 삼겹살, 목살 또는 돼지갈비일 것이다. 가끔 조금 무리해서 항정, 갈매기, 가브리살도 만난다.
소비자들이 식당을 선택할 때 국내산, 수입산을 고민하지 않는다. 경험상 맛있는 집이나 단골집으로 향한다. 그들이 선택하는 것은 식당의 맛이다. 식당의 맛은 돼지고기 원산지가 아닌 원료의 품질, 조리방식, 서비스 등과 결합한다. 원료의 품질만이 좌우되지 않는다. 그러면 원재료인 돼지고기 하나를 봤을 때는 원산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품질이 중요하다. 소비자들은 좋은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식당에 가는 것이다.
소비자가 정육점, 마트에서 만나는 돼지고기는 다양하나 그래도 주로 삼겹살, 목살, 앞다리 정도를 만날 것이다. 소비자들이 마트에서 돼지고기를 선택할 때 대부분 사람은 국내산을 선호한다. 꼭 맛을 떠나서 국내산 품질이 수입육보다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인식이 있다.
정리하면 일반 소비자들의 돼지고기 소비는 원산지와 상관없이 맛있는 돼지고기를 선호하며, 원물을 직접 구매하는 경우에만 국내산에 대한 선호가 있다. 소비자들은 품질 좋은 돼지고기를 소비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는 이런 일반적인 상황이 통하지 않는다. 국내산, 수입산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좀 더 저렴한 것을 찾는다. 현재 소비자들은 저렴한 돼지고기를 찾는다.
2. 경기 침체기에 농장에서 할 일
한 30년 가까이 산업에 종사하면서 느낀 것은 돈가는 경기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경기가 좋든 나쁘든 돈가는 농장에서 출하하는 비육돈의 양에 따라서 결정된다. 당연한데도 한때는 다른 영향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농장의 수익성은 원재료의 상승에 따라 영향을 받기는 하나 시장 상황에는 큰 영향이 없다. 현재 경기가 나쁨에도 불구하고 돈가는 여전히 5,500원 이상이다(평년보다 높음).
그러면 농장은 우리 한돈산업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출하 비육돈의 품질 개선/유지를 해야 한다. 상황이 어떻든 돼지고기의 품질이 좋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품질은 단순한 출하 체중이 아닌 출하일령, 종돈 구성을 포괄한다. 시장 상황과 상관없이 계절적으로 돈가가 올라가는 시기에는 돼지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이렇다 보면 페널티가 빠진 조건이 시장에 돌아다닌다. 소위 밀어 빵이라는 조건이다. 이런 조건들은 한돈산업에 정말 좋지 않다. 생물의 특성상 어느 정도 품질 이슈에 대하여 이해하는 수준으로는 용인될 수 있으나, 90kg 비육돈과 115kg의 비육돈이 같은 값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떠돌아다니는 조건은 한돈산업 전체를 흐트러뜨리고 한돈의 가치를 저하한다.
(그림 1)을 보면 돈가가 높은 시기에 등급 출현율이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여름철 계절적인 이슈로 등급 저하는 있으나 대체로 밀어빵 조건을 제시하는 업체의 등급 출현율이 떨어진다.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작은 바람은 조건과 상관없이 농장에서 최대한 선별 출하를 하여, 일정 수준의 한돈 품질을 유지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다른 하나는 양보의 미덕이다. 출하 지급률 1%는 삼겹살 원가를 170원/kg 올린다(당사 생산원가 기준). 지금 같은 시기에 삼겹살 가격 100원의 차이로 소비자들은 수입 삼겹살로 손길은 돌린다. 작은 원가 경쟁력이 한돈에 있을 수 있도록 농장에서 조금 양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육가공과 농장이 지속해서 반목하는 이유는 농장에서 돈가 상승기에 지급률 인상을 요청하고, 또 가을철 출하물량이 늘어날 때 육가공에서 입고를 거부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생긴다. 두 번째 작은 바람은 시장이 어려울 때 어느 정도 양보를 하고 상황이 조금 나아지면, 요청하는 그런 동업자 정신을 유지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3. 경기 침체기에 육가공이 할 일
한 5년 만에 겪는 어려움 같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육가공사업이 어려웠던 시기로 돌아간 것 같다. 항상 4월이면 비슷한 이슈가 반복되었다. 3월은 어느 정도 신학기 특수가 있고, 5월은 가정의 달이라 소비가 폭발한다. 4월은 돈가가 오르는 상황에 판매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대부분의 육가공업체가 적자를 보는 시기였다. 5년 동안의 4월은 코로나로 온라인시장이 활성화되고, 엔데믹 이후 회복되는 경기로 어려운 4월을 겪지 않았다.
올해 상황은 그렇지 않다. 대형 육가공업체들은 브랜드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고 영업사원들이 필드에서 가격을 유지할 수 있지만, 중소 육가공업체들은 그렇다 할 기반이 없어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통 양돈 시세의 320~340% 삼겹 도매가격이 무너진 지 오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할 수 있는 것은 버티는 것이다. 기본에 충실하게 버티는 것, 시장 상황이 좋아 질 때까지 흐트러지지 않고 버티는 것이 육가공이 할 일이다. 어느 정도의 판가를 고수해야 하며, 스펙과 품질도 유지해야 한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한돈 육가공업체들이 지켜왔던 기본을 유지해야 한다는 바람이 있다.
4. 정부에의 바람
현업에 오랫동안 종사한 사람으로 자본주의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처럼 축산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 개입은 소비자들의 소비 활성화와 중소기업에 대한 개입이다. 현재 준비하고 있는 돼지고기 할당관세처럼 대기업을 위한 개입은 필요 없다. 누구를 위한 할당관세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햄 소시지 수입 원료육에 대하여 관세를 인하하면 대기업에서 생산하고 있은 소시지 가격이 내릴지 의문이다.
국내산 뒷다리가격이 폭등하지 않은 상황에서 할당관세 물량이 들어오면, 한돈 뒷다리가격에 영향을 줄 것이다. 현재 마리당 5만원 수준의 적자를 보는 육가공업체들의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다. 육가공업체들의 상황이 악화하면 장기적으로 한돈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돈가에도 영향을 준다. 정부에 대한 바람은 적어도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소비 진작을 위한 서민을 위한 정책을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가 글을 쓰면서 한 번도 어렵지 않았던 시기가 없었던 것 같다. 농장 상황이나 사료업체의 상황은 좋은 시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육가공의 사정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한돈산업은 농장, 도축/가공, 유통, 이 세 가지 축이 튼튼할 때 산업이 지속될 수 있다. 어느 한 축이 무너지면 우리나라의 한돈산업은 무너질 것이라 예상된다. 현재 좋지 않은 시장 상황이 지속되고 높은 돈가가 유지되면 육가공업체는 생존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바람을 적어본다. 농장에서는 품질과 양보를, 육가공에서는 기본에 충실한 버티기를, 정부에게는 중소기업과 서민을 위한 지원을 바라며 글을 맺는다.
월간 한돈미디어 2025년 5월호 50~53p 【원고는 ☞ choibug@daesanmeat.co.kr로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