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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돼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신 문 철 박사 / 국립축산과학원 난지축산연구소

전 세계적으로 돼지의 품종은 100여 종으로 보고되어 있다. 그중 양돈산업에 활용되는 것은 30여 종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흰색계통의 랜드레이스종, 요크셔종과 유색계통의 두록종, 버크셔종이 주로 사육되고 있다. 위의 품종들은 돼지고기 생산이 다른 품종보다 경제적이기 때문에 국내 양돈산업에서 활용도가 높다. 하지만 경제적 가치를 떠나 우리가 꼭 지켜야 하는 품종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고유품종인 재래돼지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고유 유전자원인 재래돼지의 역사와 보존 및 육종연구 현황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재래돼지의 역사

 

우리나라의 재래돼지는 예로부터 사람들과 동고동락해왔다. 집안의 부를 가져다주는 동물로 여겼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큰일을 앞두고 성공과 평안을 기원하기 위한 고사상에는 돼지머리를 올렸다. 또 꿈에 돼지라도 나타나는 날에는 재물이 들어오는 길몽으로 여겨졌다. 돼지고기는 또 어떤가? 돼지고기는 제사, 잔치를 포함하여 우리의 경조사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이러한 재래돼지는 대체로 소, 말과 함께 북방으로부터 고구려 시대에 유입되어 남하한 것으로 추정된다. 재래돼지는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우리나라의 기후와 풍토 조건에 잘 적응하여 자연 선발·사육되어왔다.

 

고유의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재래돼지에게도 멸종의 위기는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08년을 전후하여 생산능력이 낮은 재래돼지를 개량할 목적으로 다양한 개량종들이 국내로 도입되어 재래돼지와의 잡종화가 많이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에 산간오지나 도서지역의 일부를 제외하고 순수한 재래돼지의 혈통은 거의 소멸하기 직전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재래종에 대한 관심과 유전자원에 대한 인식의 고조로 재래종에 대한 조사와 수집 활동이 시작되었다. 국내 각지에서 토종흑돼지 또는 꺼먹돼지 등의 명칭으로 불리고 있으며 재래돼지 형태를 가진 돼지들을 수집하였다. 1986년에 제주축산진흥원은 우도 등에서 원형에 가까운 재래종 돼지 5마리(암 4, 수 1)를 확보해 순수 혈통의 제주 재래돼지를 사육·관리해 왔으며, 2015년에 천연기념물로 등록되었다.

 

1988년 축산시험장(현,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충청북도 종축장(현, 충북 가축위생연구소)과 제주축산진흥원(제주도 도서지역 및 민가에서 수집)으로부터 9마리(암 5, 수 4)의 재래돼지를 도입하고 증식하면서 재래돼지에 대한 순수화 복원 연구가 비로소 시작되었다. 국립축산과학원은 과거 문헌의 외모를 중심으로 증식 선발하였으며 1998년 재래돼지 외모심사 기준을 설정하였다.

 

2. 재래돼지를 활용한 육종연구 및 산업화 현황

 

국립축산과학원 난지축산연구소에서는 지난 2005년 제주도 재래종 흑돼지와 랜드레이스 품종간 교배를 통해 1,400여 마리의 참조축군을 조성하였다. 참조축군을 대상으로 육질에 미치는 유전자와 흑돼지의 검은색을 조절하는 핵심 유전자를 분석하였고, 결과 고기맛을 좌우하는 유전자를 발견하였다. Myosin Heavy Chain 3(MYH3)라고 불리는 유전자를 구성하는 수만 개의 염기 중 제주 재래흑돼지는 개량종인 랜드레이스 품종과 달리 6개의 염기가 없는 염기 결손 상태인 것을 확인하였다.

 

다시 말하면 제주 재래돼지가 다른 종의 돼지와 다르게 염기 결손으로 인한 변이 MYH3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재래돼지 중 근육 내 지방량과 적색육이 일반 돼지보다 3배 이상 높게 나타나는 등 맛이 좋다는 결과들이 여러 연구 결과 나온 바 있다.

 

 

국립축산과학원 난지축산연구소에서는 국산 품종 개발을 통한 종자주권 확립과 돼지고기를 구워서 먹는 것을 즐기는 국내 소비자 선호도에 따른 앞다리살, 뒷다리살, 등심 등 흔히 말하는 ‘소비자 비선호 부위’ 적체 두 가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재래돼지를 기반으로 ‘난축맛돈’을 개발하였다.

 

제주 재래돼지의 맛 관련 유전자를 분석하였고, 개량돼지에 접목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가축의 경우 유전자 수준에서 품종 개발한 사례가 전무한 상황에서 형질 관련 원천기술을 독자 개발해 특허등록(개량된 돼지 및 그의 제조방법)도 완료했다. 이를 바탕으로 2013년 세계 최초로 육질형질과 흑모색 유전자를 고정한 흑돼지 ‘난축맛돈’을 개발하고, 2014년에는 생축 자체를 특허 등록한 후 제주도 내 흑돼지 농가에 분양을 시작했다. 아울러 ‘난축맛돈’에 대한 상표등록도 마무리했다.

 

‘난축맛돈’은 개발 목적과 같이 뛰어난 육질을 가진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가장 근내지방이 없는 부위 중 하나인 등심의 근내지방 함량이 일반 백돼지는 평균 2~2.5%인데 반해, 난축맛돈 등심의 근내지방은 평균 10.5%에 달한다. 최소 4배 이상 높은 수치다. 출하일령의 경우 180일 정도로 일반 삼원교잡종에 근접한 상태다.

 

 

국립축산과학원 양돈과에서 개발한 ‘우리흑돈’ 역시 재래돼지의 맛과 육질은 유지하면서 생산성을 개선해 경제성을 높인 흑돼지 품종이다. 국내 고급육 수요에 부합하며, 합리적인 생산성을 갖춘 국산 흑돼지 개발 필요성에 의해 개발된 품종이다. 2008년 재래돼지 복원 후 산업적 활용 방안을 고민하다 육질이 뛰어난 재래돼지의 장점에 육질은 물론 고기 생산량도 우수한 ‘두록’의 장점을 극대화한 한국형 흑돼지 개발에 나섰다.

 

개발과정에서 재래돼지의 육질을 유지하기 위해 재래돼지 품종 혈액 비율을 37.5%로 고정하였다. 여기에 돼지 털색 유전자(MC1R)를 100% 흑색으로 고정해 이모색 발현을 사전에 차단했다. 그 후 성장이 우수한 개체를 선발하며, 2015년에 최종적으로 맛있고 성장이 빠른 ‘우리흑돈’이 개발되었다.

 

‘우리흑돈’이라는 이름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흑돼지 이름짓기’ 공모를 통해 신청받은 422건 가운데 내외부 전문가 심사를 통해 결정한 이름이다. ‘흑돼지의 국산화를 이루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2015년에는 상표등록도 완료했다. 이 같은 ‘우리흑돈’은 일반 백돼지보다 근내지방과 향미가 뛰어나 고급육으로서 경쟁력을 갖췄다. 출하일령은 180~190일로 ‘난축맛돈’과 마찬가지로 삼원교잡종에 근접하였다.

 

국립축산과학원에서 개발된 두 품종은 현재 민간에 분양하고 있으며 생산 및 공급 안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난축맛돈’은 생산과 유통·판매까지 체계적인 틀을 잡아가고 있다. ‘우리흑돈’의 경우 전문 민간 종돈장을 육성하여 생산자에 분양하는 방법을 활용하여 빠르게 보급하고 있다. 국내 고유의 유전자원인 재래돼지를 활용한 두 품종의 성공적인 산업화를 기대한다.

 

월간 한돈미디어 2022년 9월호 88~92p 【원고는 ☞ shinemoon@korea.kr로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