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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돈미디어 23년 9월호, 우리가 삼겹살을 미치게 좋아하는 건 버크셔 돼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김 태 경 박사 / 식육마케터
건국대학교 미트컬쳐비즈랩
건국대학교 식품유통경제학과 겸임교수

■ 지난 7월 16일 SBS 일요 특선 다큐멘터리[우리 돼지 연대기, K-PORK 혁명]가 방송되었다.

 

 

몇 달 전에 연락을 받고 사전 인터뷰를 했다. [대한민국 돼지 이야기], [삼겹살의 시작] 등 돼지의 인문학적 역사 연구를 하면서 미래의 양돈산업을 고민하는 필자 입장에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작가와 PD와 함께 인터뷰하면서 미트 마케터로 식육시장의 미래를 연구하는 연구자이며, 현장에서 미트 마케터로 활동해 온 필자의 주장이지 필자의 주장에 대해서 한돈협회나 한돈농가들이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미리 말했다.

 

필자는 새마을 운동 이후 생산성 중심의 한국 양돈산업 미래, 아니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우리 양돈산업의 발전이 일본에 돼지고기를 수출하기 위해 일본 자본의 투자로 기업화 및 전업화되었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우리 양돈산업의 발전은 박정희 정권의 계획된 의도에 의해서 성장했다고 본다. 북한의 김일성이 이밥에 고깃국을 인민에게 배불리 먹이는 것이 공산 혁명의 목표였듯이 박정희 입장에서는 가난한 대한민국이 경제 성장을 통해 마음껏 고기를 먹을 수 있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소고기를 좋아하지만 1960~70년대 한우는 육우가 아니라 역우로의 역할이 컸던 시기이다. 사육일령이 길어서 늘어나는 육류 소비를 한우로 채워가는 건 불가능했다. 당시는 외환 사정이 좋지 않아 무작정 수입 소고기양을 늘릴 수도 없었다.

 

■ 소고기의 대체재로 선택된 것이 돼지고기였다.

 

양돈산업을 장려했다. 전역하는 군인들에게도 양돈기술을 가르쳤다. 1960년대 처음 양돈을 국가에서 장려할 때는 사료를 자급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워낙 사육두수가 급증하니 사료를 수입할 수밖에 없었지만, 나름 국내 사료산업을 육성할 수 있었고 농촌의 큰 소득원이 하나 생겼으니 별문제가 되지 않았는지 모른다. 이렇게 시작된 우리나라의 양돈산업은 1950년 전쟁으로 남한에 156,000두의 돼지밖에 없었는데 2022년 9월 11,326천두로 72.6배 증가했다. 산업의 규모도 농업분야에서 쌀과 1, 2등을 경쟁할 수준이다.

 

이런 양적 성장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으로 소득의 증가와 인구 증가와 겹쳐져서 이룩된 성과이다. 실질 소득이 감소하고 저출산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지금부터는 시장 규모는 더 이상 커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 줄어들 것이다. 가격이 싼 수입돼지의 시장 점유율이 늘어날 것이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 이미 오래전에 일본 돼지 사육두수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 한돈산업계에서 대체육과의 경쟁을 고민한다고 하는데, 필자는 이건 어딘가 있을 외계인의 침공을 고민하는 수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돈산업은 수입 돼지고기, 닭고기와의 경쟁을 일차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이제부터 진짜 고민해야 할 경쟁상대는 한돈산업 내 5,822개 농장간 경쟁이 될 것이다. 살아남는 농장과 사라지는 농장이 생겨날 것이다. 똑같은 YLD에 거의 같은 사료 프로그램, 거의 같은 돈사, 같은 사육기간에 규격돈이라고 비슷비슷한 출하체중에 농장간 차별점이 없다.

 

우리나라 전체가 하나의 돼지 농장이라고 해도 맞는 말이다. 이게 박정희가 제국주의 플랜테이션 농업을 보고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일본도 역시 우리에게 한 품종의 돼지, 소, 닭을 키우기를 강요했다. 단일 품종만 키우는 제국주의 플랜테이션 농업의 연장선상에 우리 한돈산업이 있는 것이다. 값싼 고기를 공급할 목적에 최적화된 모델이다.

 

이런 규격화된 시장에서 경쟁력의 차이는 MSY 경쟁이 될 것이다. 문제는 공급이 과잉된 시장에서 소비자의 품질에 대한 욕구는 높아진다는 것이다. 누차 이야기를 하지만 1990년대 초반 얼리지 않는 돼지고기 하이포크 이후 한돈은 냉장육, 수입육은 냉동육, 냉장육은 품질이 좋은 고기, 냉동육은 품질이 떨어지는 나쁜 고기라는 이분법은 최근 들어 발전하는 해동 기술로 옛날 말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냉동육을 과학적으로 해동하면 일반인이 구별 불가능한 냉장육으로 복원되는 세상이 되었다.

 

■ 이런 뉴노멀한 시대에 한돈산업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지는 방안은 무엇일까?

 

필자는 품질 차별화하고 생각한다. 이런 필자의 주장이 생산성 중심의 생각을 하는 한돈산업계에서는 미친 소리처럼 들릴 것이다. 몇 해 전 대학원 수업 시간에 한돈의 품질 차별화를 이야기했더니 양돈농장에 근무하는 학생이 품질을 차별화해도 돼지 한 마리에 만원 더 받을 수 없는 시장인데 교수님 이야기가 맞지 않다고 반문을 했는데 사실 그때는 할 말이 없었다.

 

왜? 그때는 출하하면 무조건 다 팔리던 시대라 그 학생의 말이 맞았다. 필자는 돼지고기 공급 과잉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아무도 들어 주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돼지고기 공급 과잉 시대가 되었다고 이야기해도 아무도 필자의 말을 들어 주지 않는다. 냉동창고에 쌓여 있는 삼겹살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방류되면 가격이 올라 큰돈이 될 것이라고 다들 믿고 있다. 문제는 이런 행운이 늘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 하여간 이런 혼돈의 시대 “이제는 숫자가 아닌 품질의 시대이다”

 

제주 흑돼지를 시작으로 두록, YBD, 난축맛돈, 우리 흑돈 등 품종이 다른 돼지고기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데 유독 버크셔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이번 SBS 일요 특선 다큐멘터리[우리 돼지 연대기, K-PORK 혁명]의 출연을 통해 좀 유명해졌으면 한다.

 

 

YBD의 전도사처럼 YBD를 극찬하고 다닌다. 고깃집을 새로 열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YBD를 쓰라고 추천한다. 난축맛돈이 시장에 안착하는데 아마 보이지 않는 필자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뼈 등심을 숙성해서 대중적 인기 상품화시킨 숙성도에서 처음 취급한 것이 난축맛돈이라 유명해졌다. 우리 흑돈도 여기저기 소개하고 다닌다. 몇몇 유명 셰프의 평가로는 매우 훌륭한 돼지고기로 우리 흑돈 삼겹살이 너무 좋다고 한다.

 

 

버크셔K가 있다는 건 버크셔K 초창기 때부터 알았다. 남원에 가서 버크셔K로 만든 하몽도 먹어보고 삼겹살도 구워 먹어봤다. 일본의 구로부타, 가고시마 흑돼지가 버크셔이니 일본에서 먹어봤던 최고의 돼지고기 맛을 한국에서 다시 만나서 기뻤다. 특히 버크셔는 샤브샤브로 먹으면 더 맛있는 것 같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버크셔K 마케팅에 참여하고 있어 필자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버크셔K는 미국 품종의 버크셔를 가져와서 한국화했다 하고 이야기하는데 다들 서양 돼지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버크셔가 이 땅에 처음 들어 온 것이 1905년경이었다. 일제가 권업모범장을 만들고 처음 요크셔와 버크셔 두 품종의 돼지를 가지고 들어 왔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산자수가 많은 요크셔를 보급하고 싶었지만 농민들이 난생처음 보는 덩치 큰 흰색돼지에 대해서 거부감이 컸다. 1920년대 들어 일본에서는 육식이 활성화되어 소고기의 품귀현상이 일어나 돼지고기 소비가 늘어난다. 우리가 아는 돈가스, 카레라이스, 크로켓 등 돼지고기가 들어가는 요리들이 이 시기에 대중화된다. 1920년 일제는 조선 반도의 재래돼지와 버크셔와의 누진 교배를 통해 돼지 개량 사업을 본격적으로 한다.

 

 

처음엔 별 성과가 없었지만 1935년 전체 돼지 사육두수 1,616천두 중 975천두가 개량종 버크셔이거나 버크셔와 재래종의 잡종이었다. 1942년 마지막 자료에 의하면 돼지의 72%가 개량종이나 잡종이었다고 한다.

 

재래돼지의 특징을 문헌상 기록에서 살펴보면 조선 1920년 농업편람에는 “재래돼지는 털 색깔이 흑색으로 체격은 작고 체중은 22.5~32.5kg이며, 머리는 길고 뾰족하며, 배는 아래로 심하게 처져 있고, 비만성이 없고, 느리게 자라나 체질이 강건하고, 번식이 좋으며, 특히 육질이 조선사람 입맛에 적합하다”라고 쓰여 있다. 재래돼지의 육질은 기름진 맛이 덜했던 것 같다. 해방 이전에 조선 반도에서 사육되는 돼지의 70% 이상이 버크셔 계열이었다면 우리는 적어도 100년 전부터 버크셔를 먹어 온 것이다.

 

해방 이후의 돼지 품종별 사육두수를 살펴보면 버크셔 품종의 사육두수가 1974년까지도 월등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기타 사육두수의 돼지 중에 많은 수가 버크셔 피가 섞인 잡종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 우리나라의 전업 양돈이 시작되기 이전에는 버크셔가 지배적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삼겹살이 서서히 유행하기 시작하는 1970년대 말 랜드레이스의 보급이 늘어나고 삼원교잡종도 도입되기 시작한다. 이는 우리가 근대에 먹기 시작한 버크셔의 감칠맛 가득한 기름 맛을 흐려졌다는 걸 의미한다.

 

사실 필자도 처음에 버크셔의 기름 맛에 대해서 별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몇 해 전 박찬일 셰프의 광화문 국밥과 옥동식의 돼지 곰탕을 먹어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 흔한 삼원교잡의 백돼지를 아무리 삶아도 광화문 국밥, 옥동식의 돼지 곰탕의 감칠맛을 따라갈 수 없다. 버크셔 국물은 닭뼈 등 다른 조미료를 가미한 것처럼 엄청난 감칠맛을 가지고 있다.

 

 

1970년대 삼원교잡의 백돼지가 보급되면서 예전 버크셔 흑돼지의 맛보다 맛없는 돼지고기를 먹게 되면서 그 나만 기름이 많아 기름 맛이 진한 삼겹살 부위에 우리가 집착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적당한 삼겹살의 지방층을 유지하기 위해서 전체적으로 다른 부위들의 지방함량이 줄어들어 더 맛없는 돼지고기를 우리는 만나고 있는지 모른다.

 

세계적으로 현대에 들어 돼지고기는 ‘The other white meat라고 지방이 없는 살코기를 생산하는 쪽으로 개량이 된다. 미국이나 서구에서는 돼지고기의 70%를 햄, 소시지 등 육가공품으로 소비하니 지방이 적어 맛이 떨어져도 일정한 지방을 더해 디자인한 맛을 낼 수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생고기를 주로 구워 먹는 나라에서는 삼겹살 이외의 부위가 예전보다 더 맛없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그나마 맛있는 삼겹살만 열심히 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 우리 민족은 고기를 삶아 먹고 끓여 먹고 지져 먹고 볶아 먹는 등 다양한 요리법으로 먹었다.

돼지고기는 냄새가 유독 심해서 파, 마늘 같은 향신 야채나 된장 등을 넣고 삶거나 끓여서 주로 먹었다. 구로부타, 가고시마 흑돼지, 버크셔k(다 같은 버크셔 품종)의 샤브샤브를 먹어보면 버크셔 돼지고기가 얼마나 맛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돼지고기 김치찌개에 버크셔의 지방이 들어가면 감칠맛이 다르다. 버크셔가 보급된다면 우리는 돼지 한 마리 전체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버크셔를 “돼지고기의 와규” “돼지고기의 고베 비프”라고 한다고 한다. 돼지고기는 지방 맛이 풍부해서 맛있는 고기인데 버크셔 품종은 재래돼지 품종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지방 맛을 지니고 있다.

 

■ 버크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버크셔 같은 차별화된 품종 사육에 대해서 이제 양돈농가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는 것이다.

 

버크셔는 이미 120년 전에 우리 한반도에 들어와 우리 곁에서 우리가 즐겨 먹던 흑돼지이다. 재래나 토종에 대한 학문적으로 확실한 정의에 적합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베이비붐 세대가 어렸을 때 먹었던 김치찌개 맛의 비밀이 버크셔의 비계였다. 잊혔던 추억의 맛을 다시 복원해 놓은 것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서서히 사육되고 있는 버크셔이다.

 

돼지고기를 소고기의 대체재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시대이다. 이제 돼지고기와 소고기는 경쟁 구도이다. 돼지고기를 먹을까? 소고기를 먹을까? 고민하는 시대이다. 돈이 없어서 돼지고기를 먹던 시대도 한우가 귀해서 돼지고기를 먹던 시대도 아니다. 돼지고기는 돼지고기의 맛으로 평가받고 돼지고기가 맛있어하는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아무리 비싸도 먹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맛의 시대에 우리 맛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버크셔를 한번 먹어보는 건 어떨까?

 

월간 한돈미디어 2023년 9월호 96~102p 【원고는 ☞ brandkim@naver.com으로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