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2 (일)

  • 맑음동두천 15.3℃
  • 구름조금강릉 15.7℃
  • 맑음서울 16.6℃
  • 맑음대전 14.0℃
  • 구름많음대구 18.3℃
  • 구름많음울산 16.8℃
  • 구름조금광주 14.8℃
  • 구름많음부산 17.3℃
  • 맑음고창 11.9℃
  • 구름조금제주 15.8℃
  • 맑음강화 15.4℃
  • 맑음보은 12.5℃
  • 맑음금산 12.5℃
  • 맑음강진군 15.1℃
  • 구름많음경주시 17.8℃
  • 구름많음거제 14.8℃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왜 우리는 삼겹살을 사랑하는가?

김태경 식육마케터

- 몇 년 전까지 우리나라의 많은 음식 평론가들은 거의 다 삼겹살은 대일 돼지고기 수출 잔여육이라고 했다.

2016년 전주 MBC 창사 51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검은 삼겹살에서는 ‘한국은 어쩌다가 삼겹살 공화국이 되었을까? 돼지고기는 효자 수출품이었다. 기름기 적은 등심과 뒷다리를 일본에 팔아 큰돈을 벌었다. 남겨진 뱃살은 국내 소비자가 먹어줘야 했다.

 

그런데 지방에 입맛이 길든 나머지 지구촌 돼지 뱃살의 1/4을 수입하고 뒷다리나 등심 같은 건강육을 거꾸로 폐기 처분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비용은 삼겹살에 전가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라고 삼겹살을 좋아하는 우리의 돼지고기 소비를 맹비난했다.

 

이때까지 돼지고기를 관련된 일을 30년을 하면서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겹살을 유독 좋아할까? 하는 의문을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다.

 

우선은 다큐멘터리 검은 삼겹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만 삼겹살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베이컨이란 이름으로 삼겹살을 먹고 있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2016년까지 현업에서 일하면서도 고기의 역사나 고기 미학 같은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고기를 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식육 마케팅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지만 고기나 삼겹살을 경제재, 마케팅의 대상으로만 보았었다.

 

- 유명한 세프면서 음식 평론가인 박찬일 주방장이 친구다. 그래서 물어봤다.

왜? 음식 평론가들은 당연히 삼겹살을 대일 수출 잔여육이라고 생각하는지?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마장동에 취재하러 갔는데 그때 인터뷰를 한 마장동 식육업자가 삼겹살은 수출 잔여육이라고 말했어” 마장동 업자의 인터뷰와 1980년대 이후 대일 돼지고기 수출 시에는 삼겹살은 국내 가격이 일본 수출가격보다 높아서 수출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삼겹살이 일본에 수출되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음식 평론가들이 돼지와 돼지고기에 대한 아니 한돈산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자료가 없다는 걸 알고 미트 리터러시 고기의 식해력을 높이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여기에 황교익은 소설을 하나 더 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삼겹살을 많이 먹게 된 데에는 굉장히 불행한 역사가 있습니다.”2017년 6월 30일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는 맛있는 삼겹살 뒤에 가려진 우리의 슬픈 역사에 관한 이야기가 방송됐다.해당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김영하 작가는 아침을 준비하며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에게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삼겹살을 많이 먹느냐”고 물었고 이에 황교익은 “불행한 역사가 있다”고 대답했다.

 

황교익은 “1960~70년대 대규모 양돈산업은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일본 사람들이 고기를 먹기 시작하며 돼지를 키우게 됐다”고 말했다. 한창 일본에서 돼지고기 소비량이 급증하자 ‘배변물 처리’가 문제가 됐고 일본은 자국에서 돼지를 키우는 대신 한국에서 돼지를 키우기로 했다.

 

다시 말하면 일본에 돼지고기를 유통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양돈산업이 들어서게 된 셈이다. 이건 다 소설이다. 일본이 양돈기지를 건설한 건 대만이다. 이 방송에 대해 아쉬움은 농장에서 식탁까지 황교익 알쓸신잡 삼겹살 다시 생각해 본다. 팜인사이트(farminsight.net) 칼럼으로 반론을 제시했다.

 

- 개인적으로는 여러 반성을 해 봤다.

사실 이렇게 좋아하는 삼겹살, 그리고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는 삼겹살에 관한 인문학적인 연구가 전혀 없었다. 우리나라가 해방 이후 상당히 일찍부터 돼지와 돼지고기를 수출했었는데 돼지와 돼지고기 수출의 역사가 정리된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책 「삼겹살의 시작」, 「대한민국 돼지산업사」를 썼다. 2019년 책들이 출판되니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에서 한돈 스토리텔링 자료집을 만들어서 유튜버나 방송작가 등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한돈에 대해 자료를 공유할 수 있게 자료집을 만들자는 의뢰를 받고 「한돈 스토리텔링 자료집」을 만들었다. 그 결과물로 다큐 「삼겹살 랩소디」가 제작되었다. 그리고 책 「대한민국 돼지 이야기」를 다시 한돈 스토리텔리 자료집으로 요약하고 일반인들이 읽기 편하게 다시 편집해서 출판했다.

 

- 이제 삼겹살의 유행이 수출 잔여육이라는 잡소리는 잔잔해졌다.

그런데도 우리는 좀 더 전문적인 입장에서 삼겹살에 대한 인문학적인 고찰, 아니 식육 과학적으로 다시 접근하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한돈산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특정 부위인 삼겹살, 목살 등 구이 부위에 소비가 집중되고 뒷다리 등 저지방 부위의 소비 둔화가 가장 큰 문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원인을 찾는 것이 앞으로 복합 유기 생산체인 돼지 한 마리의 균형 소비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기사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있다. ‘소와 같이 부위가 많지 아니하나 뒤넙적다리와 배사이에 잇는 세겹살(三枚라하는) 이 제일 맛이 있다고 하고’ 세겹살, 삼겹살 부위가 지금의 삼겹살 부위와 다르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의 돼지고기 삼겹살의 소분할 정형 기준은 제5갈비뼈(늑골)또는 제6갈비뼈에서 뒷다리까지의 등심 아래 복부 부위로서 복부지방과 갈매기살, 오돌 삼겹살을 제거하고 지방 두께를 7㎜ 이하로 정형한다. 이는 세겹살이라고 우리가 일제 강점기부터 먹던 부위가 아니라 베이컨용 스펙이다.

 

 

삼겹살 구이가 1970년대 후반에 유행하기 시작했고 그 이전에는 돼지갈비구이가 대중화되었으니 우리나라에서는 돼지 통갈비를 작업해서 14마디의 갈비 전체를 돼지갈비용으로 사용했다고 봐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삼겹살이라고 이야기하는 부위는 갈비의 일부에 1930년대 세겹살이라고 이야기했던 부위가 합쳐진 것이다.

 

조선시대 보본사실도는 희생으로 쓰기 위해 돼지를 잡는 법이 그림으로 그려져서 잘 설명되어 있는데, 지금의 목뼈, 등뼈, 허리뼈 부위와 정확하기 나름 등 부위를 3부위로 삼겹살 부위를 협 (옆구리 협), 즉 갈비라고 적고 3부위로 나누었다. 다시 말하면 지금 갈비라고 하는 1번에서 5번, 그리고 삼겹살 부위를 뼈 삼겹살로 뒤 부위로 나누고 있다.

 

- 일본은 1970년대 돼지고기 수출 자유화가 되면서 자국의 양돈을 보호하기 위해서 전부위를 박스 미트로 수입했다.

1971년 농림부 자료 삼겹살을 포함한 6개 부위를 set meat 수출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자세하게 부위별로 수출 중량 자료를 우리나라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돼지고기의 부위별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료의 부위명도 한자로 표시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아마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일본에 수출했던 돼지고기의 부위별 자료는 일본측에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수입해 갔던 일본 상사에 기록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1970년대 당시의 우리나라 식육 시장에는 부분육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지육 유통으로 동네 정육점에서 직접 지육을 받아서 정육 작업을 했었다. 식당 등의 대량 거래처 납품은 대형 정육점에서 주로 했다. 미도파 백화점에 정육을 납품하기 위해 조그마한 육가공장이 생긴 것이 우리나라 부분육의 시작점이다.

 

우리나라 부분육 가공은 일본에서 양고기 부세 가공을 한국냉장에서 시작하면서 부분육 가공장이 생겼다. 일본 상사의 기술자들이 동영상을 촬영해 와서 작업자들을 교육했다고 한다.

 

 

- 삼겹살을 지금처럼 로스구이로 먹기 시작한 역사는 분명 1970년대 후반부터다.

그 이전에는 삼겹살을 구워서 소금만 찍어 먹는 로스구이 직화구이로 먹었다는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다. 조정래의 장편 소설 한강을 보면 독일에 광부로 파견되었던 이들이 삼겹살과 맥주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시대적 배경이 1960년대 중반쯤인데 소설을 잘 살펴보면 그 당시의 삼겹살 소비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한바탕 축하하고 잔디밭에 둘러앉았다. 그들이 준비한 것은 다진 고추에 버무린 돼지고기 삼겹살과 맥주, 그리고 김치였다. 돼지고기와 맥주는 모든 한국 광부들이 최고로 치는 음식이었다. 그 두 가지는 몸에 들어가 쌓인 탄가루를 해독시키고 걸러내는 데 특효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두 가지는 광부들이 독일을 천국처럼 생각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너무나 비싸 함부로 먹을 엄두를 낼 수 없었던 것들이 독일에서는 너무나 싸서 맘 놓고 먹고 마실 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가 조정래 선생의 한강에서 알 수 있는 건 1960년대 삼겹살은 지금처럼 소금에 찍어 먹는 시오야끼(소금구이) 스타일, 로스구이가 아니라 양념을 해서 구워 먹는 제육볶음 스타일이다. 이는 1960년 우리나라 양돈 수준이 부업농 수준이라 잔반으로 돼지를 키우고 거세를 하지 않아 돼지고기에 냄새가 많이 나서 강한 양념에 주물럭으로 하거나 향신료를 넣은 물에 삶거나 끓여서 먹는 습식 요리법이 주를 이루었다.

 

- 돼지고기는 가난한 민중의 축제식이나 생존식으로 존재했다.

우리가 지금의 삼겹살 구이와 같은 삼겹살 구이를 먹게 된 것은 1976년 한우 파동으로 한우 가격이 높아지고, 1978년 국내 물가 안정을 위해서 대일 돼지고기 수출이 박정희에 의해서 중단된 이후 자연스럽게 한우 로스구이가 삼겹살 로스구이로 고기만 대체된 것이다.

 

삼겹살 로스구이는 식당 사장님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돼지갈비는 포작업을 하는 전문가가 필요했다. 지금은 육가공공장에서 포작업한 돼지 갈비를 납품받을 수 있는 시대지만 1970년대에서는 식당 사장이 직접 하거나 육부장을 두어야 했는데 육부장의 위세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 비해 삼겹살은 가격도 저렴하고 정육점에서 받아 와서 구워만 주면 되니 별다른 요리기술이 없어도 얼마든 식당 운영이 가능하게 되었다.

 

우리는 소고기 등심구이, 삼겹살 구이를 로스구이라고 한다. 로스구이는 영어의 roast + 구이다. 구이구이라는 뜻이다. 스테이크와 같은 건식 조리법이다. 삶거나 끓이는 습식 조리법보다 요리 시간이 빠르다. 생고기를 내어 주니 고기의 중량감도 더 있다.

 

게마인 샤프트 농업 공동체 사회에서는 마을 잔치나 관혼상제에 돼지 한 마리를 잡아 돼지고기를 나누어 먹었다. 압축 성장의 산업화로 게젤 샤프트 이익 사회가 되면서 돼지고기는 돈 주고 사 먹는 음식이 되었다. 빨리빨리 문화에 로스구이는 최고의 요리법이다. 거기에 건식 요리법은 마이야르 반응이라고 고기의 풍미를 더 살리는 요리법이다.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은 아미노산과 환원당 사이의 화학 반응으로, 음식의 조리 과정 중 색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특별한 풍미가 나타나는 일련의 화학 반응을 일컫는다. 이 화학 반응은 프랑스 화학자인 루이스 카밀 마이야르(Louis Camille Maillard)가 1912년에 단백질 합성을 연구하던 중 처음으로 발견하였다. 이후 마이야르는 1차 세계 대전에 군의관으로 참전하고 마이야르 반응을 다시 세상이 관심을 받게 된 건 1953년 미국 농림부에서 일하던 존 호지에 의해서다. 미국은 육류 수출국이다. 자신들의 마블링 좋은 소고기를 유럽에 수출하기 위해서 근내지방이 많은 고기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건식 조리법인 스테이크 조리법, 로스구이 조리법을 홍보한 것이다.

 

미국은 소고기 생산비가 싸서 근내지방이 많은 등심 부위만 고가의 스테이크용으로 수출하고 남는 부위를 햄버거 패티로 만들어도 되는 나라다. 유럽의 소는 유육겸용종이라 사육 연령이 길다. 마블링이 잘 발달되지 않은 질긴 고기다. 돼지고기의 경우는 70% 이상을 햄 소시지 가공품으로 먹으니 직화 조리법으로 먹는 부위의 양이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이후 빨리 빨리 문화, 압축성장의 산업사회가 진행되면서 육류 건식 조리법이 급격히 도입되었다. 소고기는 마블링 좋은 투뿔등심, 돼지고기는 지방이 풍부한 삼겹살 부위의 인기가 높아졌다.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 돼지고기는 그 어느 나라의 돼지고기 못지않게 냄새 없고 맛있어졌다. 그리고 냉장으로 적당한 숙성기간을 유지할 수 있으니 삼겹살 구이에 대한 인기가 지속되고 있다. 전 세계의 돼지고기 선진국들의 수입육과 경쟁에서 당당히 우위에 서고 있다. 대한민국은 양돈 선진국이다.

 

- 돼지고기의 저지방 부위 소비를 늘리는 방법은 우리 전통의 습식 조리법을 부활시켜 나가는 것과 서구처럼 햄, 소시지의 소비를 확대하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요즘은 돼지 곰탕이나 돔베고기 등 돼지고기 습식 요리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가정간편식(HMR) 시장의 확대로 저지방 부위를 잘 가공해서 먹기 좋은 양념불고기 등 한국식 육가공 제품들이 많이 만들어져서 가정에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저지방 부위의 HMR 제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1970년대 돼지고기 급격히 건식 조리법인 삼겹살 로스구이가 유행한 건 돼지고기 냄새가 없어진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3원 교잡종이 보급되면서 돼지고기가 기존의 싱글 오리진 돼지 버크셔, 듀록, 햄프셔나 랜드레이서보다 싱거워진 것도 중요 원인이 될 수 있다.

 

사실 햄프셔나 랜드레이스, 요크셔의 돼지고기를 먹었던 기억이 없어서 그들 돼지고기의 맛이 지금 삼원교잡인 YLD종 보다 진하고 좋다고 이야기할 수 없지만 버크셔나 듀록, 그리고 YBD와 YLD 종을 비교 시식해 보면 확실히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삼겹살 구이로는 맛 차이가 그렇게 확실히 나타나지 않지만 삶아서 국물맛을 보면 확실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아마 생산성이 좋아졌지만, 맛의 깊이는 깊지 않았다. 서구는 돼지고기를 생고기로 먹는 것보다 햄, 소시지로 먹으니 고기맛 자체에 개량을 집중하기보다는 생산성 위주로 돼지 개량을 하고 그 개량된 품종이 우리나라에 보급되면서 전통적인 습식 요리는 맛이 예전만 못했다. 반면 지방맛으로 먹는 삼겹살 로스구이는 냄새를 잡고 마이야르 반응으로 풍미가 더 좋아지니 기존 습식 조리법의 돼지고기보다 맛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이제 배고픔의 시대가 아니라 탐식의 시대 MZ 세대들은 맛없는 고기보다는 맛있는 고기를 먹고 싶어 한다. 삼겹살을 우리가 사랑한 건 삼겹살이 맛있는 고기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삼겹살을 지속해서 사랑하려면 삼겹살이 더 맛있어지거나 삼겹살보다 맛있는 다른 고기가 우리에게 없으면 된다.

 

월간 한돈미디어 2022년 2월호                                 【원고는 ☞ brandkim@naver.com으로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