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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돼지고기를 아시나요?

김 태 경 박사 / 식육마케터

1. 청년 창업의 시대다.

 

아니 어느 시대나 다 청년 창업의 시대였다. 지금 한돈농장을 하는 농장주들도 아마 1980년대에는 다들 청년 창업으로 양돈업에 진출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 돌아가는 것이 많이 달라졌다. 청년 창업을 스타트업이라고 한다. 열정적으로 여러 분야의 사업에 청년들이 뛰어들고 있다.

 

축산분야에도 여러 스타트업들이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가장 있는 돼지고기는 우리가 아는 메이저 브랜드 한돈들이 아니고 얼마 전 유재석이 나오는 방송에 출연한 카이스트 돼지고기다. 카이스트 나온 청년이 돼지고기 유통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수 백억원의 투자가 이루어지고 매출이 가파른 신장률을 보인다. 작년 회사 실적을 보니 놀라운 손실을 보고 있는데도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갓 잡은 돼지고기가 마케팅 컨셉이다. 갓 잡은 이란 말은 옛날 마을 잔치 같은 것을 할 때 자가 도축을 하던 시절이나 만나 볼 수 있는 돼지고기다. 이 청년이 자신이 어릴 때 외갓집에 가서 먹어 봤다고 하는데 이 청년이 아마 1990년 이후 생이니 이 청년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에는 마을 잔치를 한다고 돼지를 자가 도축하면 불법이었을 것이다. 카이스트 나온 청년이 판매하는 돼지고기는 도축 후 4일이 지난 갓 잡은 돼지고기라고 한다.

 

식육과학을 공부한 사람들 처지에서는 이 카이스트 돼지고기도 숙성육이다. 고기에 대한 정확한 상식과 정보가 없는 소비자들은 하느님 같은 유재석이 하는 방송에 나온 카이스트 돼지고기를 맛있게 사 먹고 있다. 이 카이스트 고기는 브랜드육인데 마트에서 사는 것보다 카이스트 돼지고기가 더 맛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2. 고기시장은 비대칭 정보에 의해서 완전히 레몬 마켓이 되고 있다.

 

필자는 지난 30년간 정직한 고기 유통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나름 노력했는데, 이 카이스트 돼지고기로 지난 시간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 예전에는 정말 못 배운 사람들이 유교문화의 사회 속에서 질기게 남아 있던 백정이라는 계급의 천대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제 제법 공부한 사람들이 많이 진출하고 정보도 투명해지고 나름 고기 유통시장도 현대화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고기에 대한 전혀 학습되지도 않은 카이스트 출신이 갓 잡은 돼지고기 초 신선육이라는 마케팅하고 고기시장에 진출했다. 지금이야 사람들이 몰라서 카이스트 돼지고기를 선호하지만, 이 카이스트 돼지고기가 그냥 일반 브랜드 돼지고기와 같은 고기고 특별히 다른 관리기법이 적용된 것이 아니라는 건 아는 순간 속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과거에 물 먹인 쇠고기부터 수입육을 국내산으로 둔갑해서 판매하거나 살코기 달라고 하면 비계까지 주고, 삼겹살을 주문하면 등심이 붙은 등삼겹살을 주고, 목심을 달라고 하면 앞다리까지 썰어서 목전지를 목심이라고 판매하던 나쁜 관행들이 사라졌는데 이제는 갑자기 초 신선육이라는 식육 마케팅 전략으로 고기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3. 코로나로 비대면 고기시장이 커지고 있다.

 

정말 너무 많은 이커머스 고기 판매점들이 생겨나고 있다. 인터넷으로 고기를 판매한다는 것이 이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막상 그들 이커머스 고기 판매점들의 사이트를 들어가서 고기를 설명하는 상세 페이지를 보면 전혀 새로운 것이 없다. 우리가 마트, 정육점, 그리고 온라인 이커머스 정육점들을 통해 구매하는 돼지고기의 99% 이상은 115kg의 규격돈이다. 품종은 YLD다. 사료도 돈사도 우리나라의 6천여 농장이 거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필자는 이걸 감히 식민지 시대의 플랜테이션 농업의 연장선상이라고 이야기한다. 플랜테이션 농업이란 열대, 아열대기후 지역에서 선진국이나  다국적기업의 자본 및 기술과 원주민의 값싼 노동력이 결합하여 상품작물을 대규모로 단일 경작하는 농업 방식을 가리킨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조선반도를 자국의 쌀 생산 기지화했다. 면화와 잠사도 전략적으로 생산해서 수탈해 갔다. 조선우 지금의 한우는 산업화로 전쟁으로 부족한 농촌의 노동력을 대신해서 150만두나 수탈해 갔다.

 

해방과 전쟁 이후 압축성장의 우리나라 산업화는 농촌, 농업, 농민, 즉 지방의 식민화를 통해서 이룩한 산물이다. 지금 농업, 농촌, 농민의 위기는 산업화를 통한 현대화 과정에서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수탈하듯 우리 민족끼리 농업, 농촌, 농민의 수탈, 아니 좀 온화한 표현으로 희생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그런데도 이제는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 문제와 양극화 등으로 사회 문제가 더 커지고 있다.

 

4. 요즘 들어서 한돈산업에 대한 좋지 않은 시각들이 많다.

 

한우는 토종이니 한국소라 한우라고 하는데 돼지는 서양 품종인데 왜? 한돈이라고 하냐고 무섭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며칠 전 지방의 모 대학 축산과에서 우리 고기의 역사 특강을 하는데 한 학생이 이런 질문을 했다.

 

아니 너무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내 대답은 “우리가 먹고 있는 배추김치는 과연 한국산일까? 배추도 중국에서 가져온 품종이고 고추도 외국에서 도입된 것인데 김치는 한국의 대표 음식이다. 1885년에 서양종 돼지 8마리가 미국에서 수입되었다. 이후 140년 이상 한반도에 수많은 서양종 돼지들이 도입되고 도태되고 함께 살면서 1950년 156,400두 밖에 없었던 돼지가 지금 1,100만두 넘게 사육되면 이제는 품종을 넘어 우리하고 현대사의 질곡을 함께 넘어왔으니 이제 한돈이라고 해도 된다.”

 

우리는 너무 순혈주의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한우의 순혈주의에 가장 큰 피해자는 육우이겠지만 하여간 한돈도 더욱더 사람들과 친밀해져야 한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2배 많다. 국토의 면적도 두배다. 그런데도 돼지 사육두수는 우리나라보다 적다. 이걸 가지고 환경문제로 한돈산업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환경문제는 한돈산업의 가장 큰 숙제로 남게 될 것이다.

 

1960~70년대 수출할 자원이 없던 시절 돼지는 훌륭한 수출 상품이었다. 국민 소득이 높아져서 육류 소비는 증가하는데 외화가 없으니 마음대로 고기를 수입할 수 없던 시절 한돈산업은 비약적인 성장을 통해 부족한 육류를 공급해 줄 수 있었다. 이제는 외화도 넘쳐나니 고기를 수입해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벌써 동원이나 대상 등은 수입육 전문회사를 인수했고, 과거 사료를 수입하여 판매하던 대기업의 전략은 앞으로는 바로 고기를 직수입해서 국내에 파는 형태로 급변화할 것이다.

 

5. 규격돈은 값싼 인건비를 유지하기 위해 값싼 식료품가격을 유지해야 하는 농업 식민지화의 결과물이다.

 

이미 수출도 할 수 없는 시대에 규격돈이 필요할까? 하기야 2000년대 초반 구제역으로 수출이 중단되고도 이마트 등 대형마트에 브랜드 돼지고기를 대량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규격돈의 개념이 필요했다. 그런데 지금은 마켓컬리, 쿠팡, 오아시스 등 이커머스 기반의 새로운 유통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제 규격돈의 대량 생산보다 개성 강하고 차별화된 농장 규모로 브랜딩 된 돼지고기를 사람들은 원하고 있다.

 

시장에서 차별화된 돼지고기를 원하는데 어떻게 차별화할지 모르니 초 신선육같이 말장난만 하는 돼지고기들이 인기를 얻었다. 카이스트 돼지고기, 초 신선육 식육 마케팅 측면에서는 포지셔닝을 잘하긴 했다. 왜냐면 우리나라 주부들이 돼지고기를 구매할 때 가장 우선하는 건 신선도와 가격이다. 이걸 카이스트 돼지고기는 알고 있다. 극히 신선 마케팅 다음으로 유통구조를 혁신해서 가격을 낮추었다고 마케팅하는 것을 보면 마케팅 공부를 하긴 한 것 같은데 마케팅 공부에 앞서 고기 공부를 좀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6. 루이비돈 & PIGUP

 

필자의 아쉬움에 위안이 되는 돼지고기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YLD가 아니라 YLB 돼지로 루이비돈이라는 새로운 브랜드 돼지고기가 이커머스 시장에 조심스럽게 출시되었다. 이건 보통 버크셔를 교잡한 삼원 교잡으로 지방 융점이 낮아서 더 부드럽다. 촉촉한 감칠맛과 단맛이 입안 가득 잘 전달된다. 살코기는 섬유의 결이 세밀하여 부드럽고 고기 자체의 단맛이 있어서 심플하게 굽기만 해도 고기의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도드람푸드에서 마케팅하던 2000년대 중반 필자는 숫자 마케팅으로 1805110 캠페인을 하자고 했다. 180일을 키우고 5단계의 사료 프로그램, 특히 비육돈 후기사료를 꼭 먹여서 육질을 개선하여 출하 체중을 110kg으로 만들어야 맛있는 돼지고기라는 캠페인이다.

 

필자가 도드람을 떠난 이후 더 느림 등의 느리게 키운 돼지고기 브랜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PIGUP이라는 새로운 돼지고기 스타트업에서 제대로 된 느리게 키운 돼지 마케팅을 시작했다. 우리나라 축산 스타트업 중 가장 돼지고기를 잘 아는 스타트업이다.

 

 

 

빨리빨리 문화로 직화구이의 삼겹살만 찾았던 시대에는 느리게 키우는 것이 생산성 측면에서 많이 손해일 수 있었지만 이제 다양한 고기에 대한 욕구가 생겨나는 시장에 루이비돈이나 PIGUP같은 새로운 도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소비자들이 아니라 같은 생산자 입장에서는 ‘뭐 이런 미친 또라이 같은’ 청년들이 있을까 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기존의 생산방식과 차별화되니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7. MZ세대는 해적같이, 또라이같이, 빨치산같이 자유롭고 도전적인 세대다.

 

루이비돈을 출시한 비바리즈는 제주도에서 할아버지가 양돈업을 하셨고 아버지가 정록 육가공이라고 제주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육가공회사를 경영했던 양돈 3세다.

 

PIGUP은 우리나라 양돈산업 1세대인 돈마루, 성지농장 이범호 대표의 아들이다. 이들 한돈 2세들의 혁신적 도전을 응원한다. 나와 다른 남의 행동을 좋게 보지 않는 것이 세상이지만 새로운 세상에서는 지금과 같은 행동으로는 살아날 수 없다.

 

이제 감성팔이 마케팅 카이스트 돼지고기를 넘어 진정 품질 차별화가 이루어진 새로운 브랜드 돼지고기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좀 여담 같지만 루이비돈을 만드는 고 대표는 E여대 출신이고 PIGUP의 이 대표는 SKY 출신이다.

 

                                                                                【원고는 ☞ brandkim@naver.com으로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