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4 (일)

  • 맑음동두천 21.0℃
  • 맑음강릉 21.3℃
  • 맑음서울 22.1℃
  • 구름많음대전 23.1℃
  • 맑음대구 23.0℃
  • 맑음울산 19.5℃
  • 구름많음광주 22.6℃
  • 구름많음부산 21.2℃
  • 구름많음고창 22.3℃
  • 흐림제주 23.2℃
  • 맑음강화 18.7℃
  • 맑음보은 18.5℃
  • 구름많음금산 22.0℃
  • 흐림강진군 21.0℃
  • 맑음경주시 21.1℃
  • 구름많음거제 20.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삼겹살 담합 판결의 이면 / 김태경 박사

- 유통 권력의 역사와 ‘제값 받기’의 사투

1. 들어가며 : 소비자에게 전하는 식육 마케터의 고백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마트에 납품하는 돼지고기 가격을 사전에 합의한 9개 육가공 업체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총 31억6,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이 중 6개 법인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등 메신저 채널을 통해 ‘삼겹살 최저가 18,000원’과 같은 구체적인 가격 가이드라인을 공유하며 입찰 가격을 조율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언론 보도의 헤드라인과 공정위의 보도자료만 접한 소비자라면 이를 전형적인 공급자의 횡포로 인식하기 충분하다. “고기 파는 업체들이 짜고 가격을 올렸다”는 단순한 서사는 자극적이고 분명하다. 그러나 현장에서 30년 가까이 발로 뛰어온 미트 마케터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이번 사태는 그 훨씬 이전부터 축적된 구조적 모순의 필연적 귀결이다.

 

이 글은 판결의 법적 정당성을 부정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법은 법이고, 합의를 통한 가격 담합이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 판결이 조명하지 않은 이면(지난 30년간 한국 돼지고기 시장을 지배해온 유통 권력의 역사, 그리고 그 아래에서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몸부림쳐온 한돈 업체들의 고투)을 기록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소비자들이 단순히 ‘비싼 고기값’에 분노하기에 앞서 우리 식탁의 주인공인 삼겹살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가격 구조를 갖게 되었는지, 그 진실을 함께 들여다볼 것을 요청한다.

 

2. 제1차 삼겹살 대전 : 냉장 브랜드화와 유통 현대화의 서막

 

1990년대 초반 한국의 돼지고기 시장은 커다란 변곡점을 맞이하였다. 이전까지 동네 정육점에서 이름도 없이 ‘근(斤)’ 단위로 판매되던 고기들이 ‘브랜드’라는 이름을 달고 규격화된 상품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이 시기의 핵심 화두는 단 하나였다. ‘위생’과 ‘신뢰’였다.

 

(1) 재래 정육점의 시대와 그 한계

당시 재래시장 정육점은 소비자 접근성 측면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위생 관리의 부재, 등급 표시 없는 불투명한 가격 결정, 그리고 상온 노출로 인한 신선도 문제는 소비자들의 불신을 누적시키고 있었다. ‘고기는 아는 정육점에서만 사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시절이다. 신뢰가 ‘지인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구조는 시장의 확장을 본질적으로 제한하였다. 이 공백을 파고든 것이 바로 기업형 육가공 업체와 신흥 대형마트의 연합이었다.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여 냉장 유통 시스템(Cold Chain)을 구축하고 위생적인 진공 포장(Pre-pack) 방식을 도입하였으며, ‘육질 등급’이라는 객관적 기준을 소비자에게 제시하기 시작하였다.

 

 

(2) 브랜드 돈육의 등장과 대형마트 동맹

‘한돈 브랜드’의 출범은 단순한 마케팅 전략이 아니었다. 이는 도축에서 소비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을 기업이 책임지겠다는 선언이었다. 소비자들은 환호하였다. 깨끗한 조명 아래 투명한 포장지로 단정하게 진열된 규격화된 삼겹살은, 기존 정육점의 날것 그대로의 진열 방식과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이 시기 브랜드 업체와 대형마트는 공동의 적, 즉 재래시장 정육점을 상대로 강력한 동맹을 맺고 있었다. 현대화된 쇼핑 환경, 주차 편의, 신선하고 위생적인 식육은 소비자들을 재래시장에서 대형마트로 빠르게 흡수하였다. 이 전쟁에서 브랜드 업체와 대형마트는 명백한 승자였다. 그러나 이 승리의 씨앗 속에는 다음 전쟁의 불씨가 이미 잉태되고 있었다.

 

3. 제2차 삼겹살 대전 : 유통 권력의 탄생과 원가 이하의 갈취

 

재래시장 정육점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시장의 주도권은 급격히 대형 유통업체로 넘어갔다. 한때 브랜드 업체의 동반자였던 대형마트는 이제 절대적인 ‘갑’으로 군림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한돈 업체들의 수난시대인 ‘제2차 삼겹살 대전’이 본격화된다.

 

(1) 구제역 파동과 협상력의 붕괴

2000년대 초반 반복적으로 발생한 구제역(FMD)은 한돈산업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당시 한돈 브랜드 업체들은 일본 등 수출을 목표로 막대한 설비 투자를 감행한 상태였다. 구제역 발생으로 대일 수출이 전면 중단되자, 과잉 생산된 물량을 소화할 창구는 사실상 국내 대형마트 하나뿐이었다. 이 순간부터 협상 테이블의 구도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물량을 보내야 하는 업체와 물량을 받아줄 수 있는 유통사 사이의 역관계는 극단적인 불균형 상태로 굳어졌다. 대형마트로부터 퇴출당하는 것은 도산(倒産)을 의미하는 상황에서 업체들은 어떠한 조건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2) 미끼 상품(Loss Leader)이 된 삼겹살

대형마트들은 삼겹살을 매장으로 고객을 끌어모으기 위한 가장 강력한 ‘미끼 상품’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마트가 삼겹살 1kg을 9,900원에 내걸면, 홈플러스는 9,500원, 롯데마트는 9,000원으로 응수하는 식의 출혈 경쟁이 반복되었다. 소비자들이 환호하며 카트를 밀었던 ‘삼겹살 10원 전쟁’의 화려한 이면에는 납품 업체들이 흘린 피눈물이 고여 있었다. 마트간 가격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그 손실분은 고스란히 납품 단가에 전가되었다. 마케팅 비용 분담, 진열 위치 비용, 각종 판촉행사 참여 비용까지 요구받는 구조에서 실질적인 납품 단가는 때로 원가 이하로 떨어졌다.

 

 

이 시기 브랜드 업체들이 감수해야 했던 손실의 규모는 업계 추산으로 수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구조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주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유통사 대상 공정거래법 적용의 사각지대였으며, 소비자들은 싼 고기를 반겼고 언론은 유통사의 소비자 편익 기여를 칭찬하였다.

 

4. 제3차 삼겹살 대전 : 온라인 플랫폼의 부상과 ‘제값 받기’의 투쟁

 

2015년 이후 한국의 신선식품 유통시장은 또 다른 혁명을 맞이한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물류 인프라의 발전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신선식품 플랫폼의 급성장은, 지난 20년간 대형마트가 독점해온 유통 권력에 처음으로 균열을 내기 시작하였다.

 

(1) 플랫폼 다변화와 협상력의 회복

쿠팡 로켓프레시, 마켓컬리(현 컬리), SSG닷컴, 오아시스 등 이커머스 신선식품 채널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한돈 브랜드 업체들에는 대형마트 외에도 유의미한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복수의 판로가 확보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단순한 채널 다변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판로가 하나일 때 납품 업체의 협상력은 제로에 수렴한다. 그러나 판로가 복수로 존재할 때 비로소 가격 협상의 기본 조건인 ‘선택지’가 생겨난다. 202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돈 업체들은 처음으로 ‘대형마트의 납품 단가가 터무니없이 낮으면 온라인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레버리지를 갖게 된 것이다.

 

(2) ‘최소 납품가 방어’의 시도와 그 한계

바로 이 시점에서 이번 공정위 조사의 대상이 된 행위가 발생하였다. 업체들이 텔레그램과 카카오톡을 통해 공유한 ‘삼겹살 최저가 18,000원’이라는 가이드라인은 공정위의 해석대로라면 소비자 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한 담합이다. 그러나 현장의 맥락에서 보면 이는 수십 년간 지속된 원가 이하 납품 관행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자기방어였다. 물론 법적 판단은 다르다. 경쟁 사업자간 가격 합의는 그 동기가 무엇이든 공정거래법 위반이다. 그 점에서 공정위의 처분은 법 논리상 타당하다. 그러나 법의 형평성이 진정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같은 시장에서 납품 단가를 일방적으로 결정해온 유통 대기업의 행위 역시 동일한 잣대로 검토되어야 한다.

 

(3) 코로나19와 인플레이션의 복합 변수

이 시기 소비자들이 체감한 삼겹살 가격 인상은 업체간 담합 외에도 복합적인 외부 요인에 기인한다. 2021~2022년 글로벌 공급망 위기로 인한 사료비(옥수수, 대두박) 폭등, 에너지 비용 급등, 물류비용 상승이 한꺼번에 맞물리면서 축산물 원가 자체가 역대급으로 치솟았다. 이를 담합의 결과로 단선적으로 귀인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왜곡한다.

 

5. 담합 판결이 간과한 본질적 의문 세 가지

 

공정위는 이번 담합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더 높은 가격을 부담하게 되었다고 지적하였다. 이 판단 자체를 전면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놓치고 있는 세 가지 본질적인 질문이 존재한다.

 

(1) 첫째, 축산물의 원가 구조에 대한 정밀 분석이 선행되었는가?

돼지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다. 사료비, 인건비, 수도·광열비, 방역비, 도축가공비, 물류비, 포장비, 유통 수수료가 복합적으로 결합한 생명체이며, 그 원가 구조는 외부에서 쉽게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업체들이 협의한 가격이 과연 원가 대비 과도한 폭리였는지, 아니면 수년간 지속된 적자 구조를 겨우 메우기 위한 생존 가격이었는지에 대한 정밀한 원가 분석이 선행되었어야 한다. 단순히 ‘업체간 가격을 논의했다’는 행위 자체만으로 단죄하는 것은 해당 산업의 구조적 특수성을 철저히 무시한 처사이다. 공정위가 담합 가격이 시장 균형 가격보다 높았음을 입증하려면, 먼저 그 시장의 균형 가격이 무엇이었는지를 정의해야 한다.

 

(2) 둘째, 대형 유통업체의 책임은 정말 자유로운가?

대형마트는 납품 단가에 자신의 마진을 붙여 소비자 가격을 결정한다. 만약 납품 단가가 비정상적으로 높았다면, 대형 유통업체는 왜 이를 아무런 저항 없이 수용하였는가? 구매 협상 과정에서 가격 인하를 요구하지 않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번 조사에서 사실상 다루어지지 않았다. 더 나아가 유통업체들은 지난 20년간 납품 업체간 과도한 경쟁을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그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취해왔다. 이번 사태에서 유통업체는 피해자를 자처하고 있으나 실상은 비정상적인 납품 구조를 만들고 유지한 근본적인 책임자이다.

 

 

(3) 셋째, 자조금 할인 행사의 역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조사 기간에도 한돈자조금을 활용한 대규모 할인 행사는 빈번하게 열렸다. 한돈자조금은 양돈농가가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공적 성격의 기금으로 소비자 가격 하락을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 다시 말하면 담합이 이루어진 시기에도 공적 자금이 투입되어 소비자 가격을 완충하고 있었다. 모든 가격 인상의 책임을 육가공 업체의 담합으로 귀속시키는 것은 글로벌 인플레이션, 사료비 폭등, 에너지 비용 급등 등 구조적 외부 요인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논리이다. 이는 원인과 결과의 순서를 뒤바꾼 설명이다.

 

6. 결론 : 상생(相生)을 위한 새로운 질서의 필요성

 

공정위는 이번 조치로 시장 경쟁 질서가 회복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 기대가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공정한 경쟁이 작동하는 시장은 장기적으로 소비자와 산업 모두에 이롭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유통 대기업 중심의 포식적(predatory)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납품 업체들의 집단적 저항(그것이 담합이든 다른 형태이든)은 반드시 반복될 것이다. 법 위반 사실에 대해서는 정당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이 원칙은 흔들릴 수 없다. 그러나 그 처벌이 진정으로 시장 정상화에 기여하려면, 판결의 이면에 숨겨진 유통 권력의 횡포와 한돈산업의 처절한 생존 투쟁을 함께 들여다보아야 한다.

 

(1) 구조적 개혁의 방향

이제는 단순히 담합을 적발하고 과징금을 부과하는 수준을 넘어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이다. 대형 유통업체와 납품 업체간 비정상적인 거래 관행(리베이트, 일방적 단가 인하 압박, 과도한 판촉 비용 전가)에 대한 실효적인 규제가 작동하고 있는가? 납품 단가 결정 과정에 최소한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보장되고 있는가? 복합 유기체인 축산물의 특성을 반영한 투명한 가격 결정 시스템, 생산 원가를 객관적으로 산정할 수 있는 공인 기준의 마련, 그리고 대규모 유통업체의 우월적 지위 남용에 대한 보다 강력한 사전 규제가 필요하다.

 

(2) 소비자에게 드리는 당부

소비자들은 ‘담합’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육가공 업체를 손쉽게 지탄하기 보다 왜 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가격을 협의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구조적 배경에 주목해 주시기를 바란다. 생산자(농가)와 가공 업체가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시장에서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소비자 가격은 절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우리가 매일 즐기는 삼겹살 한 점에는 양돈 농가의 땀, 브랜드 업체의 투자, 냉장 유통망의 정밀함이 담겨 있다. 그 가치가 정당하게 인정받는 시장만이, 소비자에게는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자에게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함께 보장할 수 있다.

 

삼겹살 가격 담합 논란은 결국 우리 사회가 유통 권력의 거대함을 어떻게 견제하고, 생산의 가치를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를 묻는 무거운 질문이다. 이번 판결이 그 질문의 출발점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월간 한돈미디어 2026년 5월호 94~100p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