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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돈 소비철, 한우보다 비싼 한돈을 만들자(한돈미디어 23년 5월호)

김 태 경 박사 / 식육마케터, 건국대학교 미트컬쳐비즈랩
건국대학교 식품유통 경제학과 겸임교수

■ 소설 속 삼겹살 소비 모습

조정래의 장편 소설 한강을 보면 독일에 광부로 파견되었던 이들이 삼겹살과 맥주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시대적 배경이 1960년대 중반쯤인데 소설을 잘 살펴보면 그 당시의 삼겹살 소비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다.

 

 

소설가 조정래 선생의 한강에서 알 수 있는 건 1960년대 삼겹살은 지금처럼 소금에 찍어 먹는 시오야끼(소금구이) 스타일이 아니라 양념을 해서 구워 먹는 제육볶음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삼겹살 식당이라는 청주의 딸네집 만수네에서도 간장 양념을 하고 불판에 구웠다는 설이 있는데 초기 삼겹살 소비는 양념육 형태가 아니었을까 한다.

 

 

■ 시대 상황에 따른 돼지고기(삼겹살) 소비

1960년대만 해도 돼지고기는 비싼 식재료였다. 돼지고기가 소고기보다 싸게 인식되고 서민의 기호식이 된 건 아마도 1970년대부터였지 않을까 하는 추론을 해본다. 1976년 경제성장으로 한우 소비가 급증해서 한우 가격 파동이 일어났다. 당시 최고의 외식은 한우 불고기와 로스구이였다. 한우 가격이 오르니 자연스럽게 식당에서는 한우를 대체하여 수출용 냉동 삼겹살을 구웠다.

 

1971년 일본이 돼지고기 수입 자유화가 되면서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 냉동 부분육을 생산했다. 일본이 자국산 돼지고기를 보호하기 위해 돼지 한 마리의 모든 정육을 수입했다. 우리나라도 일본에서 수출 스펙을 받아서 처음으로 국제 규격에 맞는 돼지고기 부분육을 생산해서 수출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짝갈비를 생산해서 양념 갈비식당에 판매하던 것을 베이컨 스펙으로 작업을 하니 모양 좋은 지금의 삼겹살이 만들어졌다. 돼지갈비도 당시는 식당에서 포작업을 하고 자체 양념을 만들어야 해서 육부장이 필요했다. 피곤한 일이다. 삼겹살은 달랐다. 정육점에서 냉동 삼겹살을 받아서 그냥 테이블에 중량만 달아서 내어주면 끝이다. 23도 이상 고도수의 소주와 기름기 많은 삼겹살은 최고의 궁합이었다. 이렇게 1970년대 후반부터 무교동과 광화문에 우후죽순처럼 삼겹살 술집들이 생겨났다.

 

1990년대에는 이마트 등 대형마트들이 생기고 대일 냉장 돼지고기를 수출하기 위한 LPC들이 생겨서 냉장 브랜드 돼지고기들이 가정소비를 견인하게 된다. 돼지고기는 싸고 맛있는 고기였다. 아니 맛있고 싼 고기였다. 이렇게 지금은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돼지고기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돼지고기는 여름철 잘 먹어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었다. 1980년대까지 돼지고기는 가끔 웅취나 이취가 심한 고기가 유통되어 잘 찾지 않는 고기였다. 정육점에서 살코기를 달라고 하면 비계(지방)까지 붙여서 파니 좀 속는 기분이 들어서 싫어하는 고기였다. 한의학계에서는 한약 먹을 때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는 다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1957년 1인당 육류 소비량 조사를 한 이후 거의 돼지고기의 소비량이 소고기와 닭고기 소비량을 합친 것만큼 팔린다. 돼지고기에 대한 사랑이 베트남은 물론 중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돼지고기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가격이 싸서인지, 우리 민족이 부여계통이라 돼지고기에 대해서 특별한 애정이 있는 건지 모른다. 또한 베트남, 중국, 한국의 공통점이 유교적 전통이 강하니 유교의 영향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돼지고기 사랑은 남다르다. 특히 돼지고기의 대명사인 삼겹살 사랑은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다.

 

■ 사실 지금까지 왜? 이렇게 돼지고기(삼겹살) 인기가 있는 건지를 알아야 미래를 추측할 수 있다.

과거의 역사가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된다. 여러 해 삼겹살에 대한 역사, 인문학, 사회학적인 연구를 진행했다. 삼겹살 유행을 뇌피셜로 주장하던 맛 칼럼니스트하고의 긴 논쟁을 통해서 삼겹살이 대일 수출 잔여육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필자가 내린 결론은 삼겹살 로스구이는 과잉 미국화의 결과물이다. 삼겹살은 한국형 스테이크이다. 삼겹살은 한국형 패스트푸드이다. 베이비붐 세대, 압축성장의 원동력이 삼겹살의 기름 에너지이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면서 ‘우리가 남이가’ 외치던 것은 단순한 건배사가 아니라 농촌 공동체의 붕괴로 정체성을 잃어가던 사람들에게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종교의 제례 의식이였는지도 모른다. 많은 베이비붐 세대는 매일 밤 삼겹살을 굽고 소주를 마셨다. 개 같은 충성심으로 회사에 다녔다. 이제 고양이 같은 MZ세대가 매일 밤 삼겹살을 굽고 회사 사람들과 소주를 마시는 것은 미친 짓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외식에서 삼겹살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작년 가을부터 삼겹살 재고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삼삼데이에 엄청나게 할인해서 팔았지만, 일시적인 수요일 뿐 지속적인 수요 창출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료값 등 생산비가 계속 올라가니 지육 경락가는 하락하지 않는다. 이제 삼겹살 술집에서 둘이 마음먹고 소주랑 삼겹살을 먹으면 10만원이 넘어간다. 이제는 한돈 삼겹살은 서민의 메뉴가 아니다. 서서히 닭고기구이 식당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다. 보쌈과 낙지볶음 등 한상차림 추가 주문이 없는 술집 메뉴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번에 한우와 한돈의 소비 위축, 가격 하락이 단순히 수요공급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육류 소비문화의 패러다임 시프트의 시작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더 무섭고 긴장된다.

 

■ 우리 양돈산업이 쌀만큼 큰 시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정책도 큰 영향이 있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 육류 소비가 급증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소고기는 생산 주기가 길어서 생산 공급이 어렵다. 수입하기에는 외환이 그렇게 여유가 없었다. 양돈은 잔반이나 식품 부산물만으로도 충분히 키울 수 있다고 1960년대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1970년대 초부터 너무 돼지고기의 수요가 늘어나니 사료곡물을 수입해야 했다.

 

그래도 양돈이 가장 값싼 육류를 공급할 수 있는 길이었다. 이상하게 양계가 가장 먼저 산업화하였음에도 우리나라에서 닭고기 소비가 돼지고기 소비를 따라가지 못했다. 생산원가도 닭고기가 돼지고기보다 저렴했음에도 말이다. 이건 단순히 돼지고기가 값싼 고기여서 인기가 있었다는 걸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값싼 수입 소고기가 본격적으로 수입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에도 돼지고기 소비는 계속 증가했다. 아마 돼지고기는 한우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닭고기보다 맛있어서 소비가 많았는지 모른다. 지금까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고기는 투뿔 한우 등심이다. 다음이 한돈 냉장 삼겹살이다. 그다음이 수입 LA 갈비 순일지도 모른다.

 

■ 한돈 삼겹살이 유독 인기가 있는 건 돼지고기가 맛없어졌기 때문이라는 역설이 성립한다.

과거 삼원교잡 이전의 돼지는 깊은 돼지고기의 맛이 있었다. 반면 생산성이 좋은 삼원교잡은 살코기의 감칠맛이 버크셔, 두록, 햄프셔 등 싱글 오리진의 돼지들만 못 했다. 삼원교잡종을 만든 미국이나 유럽은 돼지고기의 70% 이상을 햄·소시지 등 육가공품으로 소비한다. 고기 자체의 맛에는 별 신경을 안 써도 된다. 육가공품의 레시피로 맛을 낼 수 있다.

 

반면 돼지고기 자체를 즐기는 우리나라는 고기맛에 민감하다. 삼원교잡종을 키우기 전에는 뒷다리, 앞다리가 인기 부위였다. 버크셔나 두록 등은 깊은 고기맛이 난다. 한편 싱거워진 삼원교잡종에서 지방이 많은 삼겹살이 그나마 제일 맛있다. 이런 마이야르 반응을 최대화하는 건식 조리 로스구이 요리를 할 때는 더욱 근내지방이 많아야 부드럽고 맛있다. 빨리빨리 문화, 성질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테이블에서 직접 구워 먹는 삼겹살이 값도 싸고 맛있는 최고의 메뉴가 되었다.

 

■ 배달 치킨 한 마리에 3만원 시대가 온다고 뉴스에 나온다.

한돈 삼겹살 1인분에 2만원 시대도 곧 오고 있다. 아니 이미 제주도 흑돼지는 1인분에 2만원이 넘어간다. 삼겹살 가격을 낮추어 보겠다는 건 멍청한 짓이다. 가격은 가치의 합이다. 삼겹살이 더 맛있어서 1인분에 3만원이 넘어가도 맛있어서 사 먹을 수 있는 가치를 만들면 된다. 안타까운 건 우리나라의 양돈장 중 많은 농장이 돼지고기의 품질에는 별로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한 번도 우리나라에서 돼지고기 품질 평가로 순위를 정해 본 적이 없다.

 

필자의 이력이 롯데햄에서 생돈 구매도 하고 대학원에서 양돈장 종사자들 교육도 하고 가끔은 생산자 단체에 초청 강연도 해서 그 누구보다도 양돈인을 많이 만난다. 지난 30년 동안 단 한 분의 양돈가도 “우리 돼지가 품질이 좀 못해”라고 말하는 분을 본 적이 없다. 아니 다들 ‘내 돼지가 우리나라 최고의 돼지지’라고 한다. 하기야 단 한 번도 농장별 돼지고기를 평가해 본 적이 없다.

 

이제 저출산 고령화로 더 이상의 돼지고기 시장이 커지지 않을 것이다. 수입은 더 많이 되고 심지어 한우 가격도 내려가서 한돈 삼겹살과 경쟁을 할지도 모른다. 세계적인 육류 소비문화는 이제 더 많은 고기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고기를 조금만 음미하고 즐기고 감상하는 시대가 되었다.

 

■ 이제 한돈 마케팅 전략 포지셔닝은 비싸도 맛있는 돼지고기 시대를 만들어가야 한다.

한우보다 더 맛있어서 더 비싼 돼지고기를 만들자.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인정받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생산성을 높이는 길이 양돈이 살길이라고 생각했다. 돼지 한 마리를 30~40만원에 키워서 40~50만원을 받을 수 있으면 부자들이 되었다. 그래서 농장의 사육두수를 계속 늘려나가려고 노력을 했다. 이제 돼지 한 마리를 100만원에 키워서 300만원에 팔아야 하는 시대이다.

 

한우보다 맛있어서 비싼 돼지고기, 미친 소리 같지만 세계적으로 돼지고기가 소고기보다 비싼 나라는 많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는 돼지고기가 소고기보다 더 비쌌다. 기후 위기 속에 곡물 가격이 계속 상승하고 전 세계의 돼지 사육두수가 줄어들면 돼지고기는 소고기보다 당연히 비싸진다. 한돈은 더 비싸질 것이다.

 

이제 싼 고기라는 포지셔닝으로는 살아남지 못한다. 비싸도 맛있는 고기로 리포지셔닝해야 한다. 미친 소리 같지만 가능한 전략이다. 비싸도 맛있으면 팔린다. 에르메스라는 명품 가방이 있다. 한 3천만원 한다. 없어서 못 판다. 한돈이 세계적인 명품이 된다면 없어서 못 판다. 그러면 1인분에 3만원은 충분히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 기존의 생각 상식과 다른 이야기를 아직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중요한 건 양돈이 기후 위기의 최대 피해 가축이라는 걸 잘 생각해야 할 때이다. 그럼 역으로 비싸게 팔아야 한다.

 

월간 한돈미디어 2023년 5월호 78~83p 【원고는 ☞ brandkim@naver.com으로 문의바랍니다.】